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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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9.0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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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사천을 노래한 현대시인들의 노작들(4)

 

시조시인으로 원은희가 <겨울, 선진리성>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장한 원 시인은 1960년대 경남 대표 시조작가 <서벌 시조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늙은 벚 밑둥치에 휑하다 겨울 바람/ 소풍길 눈망울들 죄다 어디로 간 걸까/ 한 바퀴 성을 도는 동안/ 가지에 반짝 매달린 눈물” 아마도 원 시인은 어린시절 선진리성에 소풍을 다녀간 듯하다. 그 추억이 선진리 벚꽃 가지에 반짝거리며 달려 있는 것일까? 눈망울과 눈물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겨울 선진리는 추억과 쓸쓸함이 함께 묻어나는 것 같다.

다음은 이미화 시인의 시가 구성지다. <산분령>이다.

“해질녘 삼천포, 실안 산분령으로 가자/ 살다가 때도 없이 눈물 나거든/ 멀리 수평선 끌어다 놓았다/ 끌어다 놓았다 뽕짝 한 자락 뽑으면서 가보자// 산분령은 3분 동안 울 수 있고 / 산분령은 3분 동안 나를 바라다볼 수 있는 곳// 푸른 어깨 내어주는 산자락 돌고 돌아/ 그물 던져 잡아다 주는 싱싱한 바다/ 한 고비 두 고비 비린내로 속을 채우면서 가보자./커다란 노을 손수건으로 울고 난 뺨을 닦아보자// 나직 나직 스며드는 저녁/ 마주보는 곳이 온통 바다/ 처마 낮은 집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저 불빛 따라// 그래 잘 살고 있는 게지?/ 문자 대신/ 노을진 바다 따라와 한없는 반짝거림으로 물어봐 주는 / 삼천포 내 고향, 실안 산분령으로 가보자”

시가 구성지고 아릿하다. 산분령 이름도 처음 듣거니와 저 미당의 질마재이거나 소월의 삭주구성 수준의 향토적 냄새가 물씬 풍겨나고 있다. “살다가 때도 없이 눈물 나거든”은 박재삼의 정서일 뿐만 아니라 “산분령은 3분 동안 울 수 있고/ 3분 동안 나를 바라다볼 수 있는” 시인의 사적 비감이 노을의 품으로 묻어난다. 그리고 “노을진 바다 따라와 바다 반짝거림으로 물어주는 “잘 살고 있는 게지?”와 같은 염려가 실안의 다정다감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미화 시인은 이 <산분령>으로 삼천포 정서의 짙은 향토성과 노을의 본질을 잘 드러내 주었다.

안채영 시인은 박재삼 시인의 손을 생각하며 시를 쓴다. <비오는 날에는 실안 바다로 가야 한다>가 그것이다. “비오는 날이면 실안 바다로 가보자./ 그곳에 손이 착한 사람 하나 있을 것 같은/ 비오는 날엔 그 손에서/ 든든한 약속 하나 낚아 올리자/ 바다는 늘 그의 앞이었다/ 바다를 등지고 산 날들은/ 묶인 배의 흘수선같이 시를 흥얼거렸다 /고깃배들도 어느 포구의 처마를 찾아간 /비오는 날, 천진한 한 생이 /끝간 데 없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마음 아픈 낮은 모두 어제의 일이 되었고 /연습해 두었던 어제의 일들이/ 모두 공치는 날이어도 좋다/ 이런 날 근처의 술집들은/흐릿한 수평선과 합석을 청하겠지만/ 나는 착한 손이 착하게 쓴/ 울음이 타는 시 한 편을 위해/ 옆자리를 비워 두겠다”

이 시는 <손이 착한 박재삼>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다. 박재삼이 쓴 글에서 “선을 보는 자리 이야기다. 차마 얼굴을 들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손이 보이는데 그것이 착해 보여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보인다. 박재삼의 선보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숫되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

안채영 시인은 비오는 날엔 실안바다로 가서 손이 착한 시인을 만나 그 울음이 타는 노을에 젖고 싶다는 것이다. 실안바다는 삼천포의 절경 가운데 하나인데 거기 시인의 마음이 되어 손이라도 아름답게 물드는 노을이 되고 싶다는 것일 터이다.

박재삼은 시인으로서 삼천포의 아이콘이다. 박재삼의 대표작은 <춘향이 마음> 연작시인데도 주석을 즐긴 편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우스개 소리를 잘했다. 대한일보 기자로 숙직하는 중에 쓰러져서 반신불수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회복되었다. 그래서 생의 후반부 시편들이 전반부보다는 못하다는 평이다. 젊을 때 그는 바둑을 잘 두어서 국수라는 호칭을 받았다. 서울신문에 <요석자>(돌을 즐기는 사람)라는 필명으로 바둑 국수전 관전기를 연재했다. 바둑 급수는 1급 정도인데 어찌 국수전 전략을 다 꿰뚫어 본 것일까? 그런 시인이 여성을 보면 얼굴이 금새 실안바다 노을이 되었다고 한다. 안채영 시에 <손이 착한> 이미지도 박시인의 심성 이미지에서 발상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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