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산청·함양·거창사건의 제도적 해결을 촉구하며
[아침논단]산청·함양·거창사건의 제도적 해결을 촉구하며
  • 경남일보
  • 승인 2021.09.0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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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산청·함양·거창 양민학살사건을 다루는 세 번째 학술대회가 9월 3일 경상국립대에서 열렸다. 산청·함양·거창사건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1년 2월 7일(음력 1월 2일)부터 2월 11일 사이(당시로는 구정 명절 기간)에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휴천면·유림면, 거창군 신원면에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군인이 공비토벌이라는 명목으로 속칭 ‘견벽청야’라는 작전에 따라 산청·함양지역 705명, 거창지역 719명 등 모두 1424명의 양민을 학살했다. 처음에는 거창양민학살사건으로 불리다가, 산청과 함양지역에서도 같은 부대가 같은 작전으로 양민을 학살한 사실이 밝혀져 ‘산청·함양·거창사건’으로 부르게 되었다.

사건 발생 후 유족들은 30년이 지나도록 국가에 대하여 말 한마디 못했다. 유족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억울함과 비통함을 속으로 삼켜 왔다. 1988년경 지역 언론에서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양민학살유족회가 구성되어 각고의 노력 끝에 사건 발생 44년 만인 1995년 12월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창사건 및 산청·함양사건 관련자 배상 등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 3월 제16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지만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고건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하여 자동 폐기되었다. 그 후 지역 국회의원들이 수차례 법안을 발의하였지만 현재까지 ‘배상 등에 관한 특별법’은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조성과 역사교육관 전시실 신축, 시설물 유지 보수 및 유족회 운영을 위한 국가보조금지원 등을 통해 진전된 정책을 펼쳐 왔다. 하지만 서춘수 함양군수는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원한을 풀어 주고 유족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국가배상이 추진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10·19사건과 관련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과 ‘여수·순천사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제21대 국회를 무사히 통과하여 관련자들을 위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런 가운데 김태호 국회의원이 ‘거창사건 및 산청·함양사건 관련자 배상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여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어 유족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김태호 국회의원은 이와 관련하여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우리는 그날의 아픔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잊지 말아야 한다”라며 “지금이라도 국가는 잘못된 역사로 인한 기나긴 고통의 세월을 위로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산청·함양사건 양민희생자 유족회 정재원 이사장은 7살에 부모를 포함한 가족을 잃었으며 자신도 총격을 당하고도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는 보릿고개의 어려운 시기를 부모도 없이 머슴살이를 하며 이겨냈고 주경야독을 통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왔다. 정재원 이사장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제주·여수 등과) 균형 있는 관심으로 이끌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 학술대회를 앞두고 경상국립대를 내방한 정재원 이사장의 사연은 듣는 사람을 내내 숙연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아프게 했다.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10·19사건 등 국가 폭력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은 이미 2021년 관련법 제정을 통해 열매를 맺고 있다. 양민학살사건이 분명한 산청·함양거창사건은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10·19사건보다 먼저 국가가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다. 이번 학술대회를 발판으로 무고한 양민들의 희생과 유족들의 억울함이 정당하게 인정되고,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지역사회와 정치권의 노력이 절실하다.

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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