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1]기업가 정신 수도, 승산마을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1]기업가 정신 수도, 승산마을
  • 박성민
  • 승인 2021.09.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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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수초 교정에 있는 부자소나무
◇기업가의 성지가 된 지수초등학교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는 말이 있듯이 옛날부터 ‘제대로 잘 산 부자’는 무척 드물었던 것 같다.

경주지역에서 6가지의 가훈을 지키며 12대 300여 년 동안 부를 누린 최 부자, 흉년이 든 제주도에 자신의 전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구매하여 제주백성들을 구휼하였다는 김만덕, 그리고 진주 지수면 승산마을의 지신(止愼) 허준 선생과 연암 구인회 회장 등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제대로 잘 산 부자’로 알려져 있다.

사람은 누구나 부자가 되길 꿈꾼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태어난 생가에 들러 그 기를 받으려고 한다. 부자의 기운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가치관과 삶의 과정을 살펴보고 그것을 닮으려고 하는 자세가 더 소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멀구슬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부자로서의 참된 가치를 발휘하며 아름다운 부자로 살았던 허준·허만정 선생과 구인회 회장의 탄생지 승산마을과 그 부자들을 키운 옛 지수초등학교를 탐방하기로 했다.

먼저 옛 지수초등학교부터 들렀다. 학교 정문 옆 임시 사무실에 근무중인 문화해설사께서 필자 일행을 안내해 주셨다. 1980년대 초, 어느 신문사에서 조사한 한국의 100대 재벌 중 30명이 지수초등학교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함께 간 일행 모두가 깜짝 놀랐다. 옛 지수초등학교는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회장,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 회장, GS그룹 허준구 회장 등 대한민국의 경제계를 이끈 수많은 거물들이 꿈을 키운 보금자리였다. 승산마을과 지수초등학교의 명성에 힘입어 2018년 한국경영학회에서 진주시를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 수도’로 선포했다.

 
지수초 개교100주년 기념조형물
효주 허만정 선생 본가
◇기업가 정신 교육센터와 승산마을

옛 지수초등학교 정문 안쪽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이 서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분들의 보금자리였던 폐교를 ‘기업가 정신 교육센터’로 활용할 목적으로 개보수를 하는 중이었다. 본관 앞뜰에는 ‘부자소나무’로 불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금성 구인회 회장, 삼성 이병철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이 재학시절, 학교 근처 바위틈에 자라던 소나무를 옮겨 심은 뒤 함께 가꾸었다고 한다. 부자소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 부자의 기운을 받는다는 말이 있어 승산부자마을을 찾는 탐방객들한테 포토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폐교 모서리, 졸업생 최계락 시인의 동시 ‘꼬까신’을 새긴 시비가 밝은 모습으로 탐방객들을 배웅해 주었다.

옛 지수초등학교를 나온 필자 일행은 승산부자마을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기업가의 고향’이 아닌 ‘기업가 정신 수도’로 불리게 된 까닭이 궁금했다. 면사무소를 지나 쿠쿠전자 구자신 회장 생가, LIG 구자원 회장 생가,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 생가, GS 창업주인 허만정 회장 생가, GS 허준구 회장 생가, 지신 허준 선생 고가, 야구해설가 허구연 씨 생가, 허씨 대종중 재실인 연정, 운봉정사 등을 둘러보고 효주 허만정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효주공원으로 갔다.

 
효주공원의 모습
효주공원은 과실수를 심어놓은 과수원과 조경수로 꾸며놓은 공원으로 나뉘어 있다. 매실, 감, 살구나무 등을 심어놓은 과수원은 배고픈 사람들 누구나 과일을 따 먹게끔 늘 개방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원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조경수에서 품격이 느껴졌다. 효주 선생 부인께서 생전에 자신을 위해 한 평의 땅이라도 헛되이 쓰지 말라는 말을 남기셨다고 하는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감나무는 심은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한 평 넓이만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검소하고 소박한 부자로서의 정신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던져주는 것 같았다. 효주공원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다시 한번 되새긴 뒤 지신 허준 선생의 산정인 지신정으로 갔다.

지신정 또한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재육성에 뜻을 두고 일신학교(진주여고 전신)를 설립해서 나라에 기증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 때 독립군 자금을 대고, 주민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눠 주는 등 거룩한 일을 많이 하신 허준 선생께서 말년에 계셨던 산정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허준 선생이 말년에 거처하신 지신정 원도문
만석꾼 허만진 옹의 앞마당엔 돌로 쌓아 만든 ‘승산마을 금강산’이 있다. 어려운 이웃들이 춘궁기에 먹을 양식이 없을 때, 인근 방어산에 있는 돌을 집 앞마당에 가져다 놓으면 곡식을 지급했다고 한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쌀을 지급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배려한 만석꾼의 아름다운 마음이 쌓은 돌탑이다.

그리고 연암 구인회 회장은 연암도서관을 지어 진주시에 기증하고 연암공대를 설립해 지역교육을 위해 헌신했으며, 구자경 회장께서도 지수초 체육관을 건립하는 등 지역주민들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였다. ‘나눔과 베풂, 나라사랑’을 실천한 진정한 기업가의 탄생지 승산부자마을이 있었기에, 진주가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 수도로 인정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석꾼 집터에 있는 작은금강산
◇아름다운 정서가 위대한 정신을 키운다

지신정에서 조금 내려와 부자마을전망대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 70m 정도 뒷산으로 올라가자 전망대가 나타났다.

숲이 우거져 마을을 조망할 수가 없어 서운했다. 오솔길을 따라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니 산은 온통 대나무 세상이다. 풍수지리상 승산마을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데,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이고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한다. 상서로운 동물인 봉황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 마을 뒷산에 대나무를 조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와 실개천을 따라 난 마을길을 걸었다. 큰 기와집과 솟을대문이 마을의 기품을 높이고 있었다면 실개천, 마을길, 토담, 뒷산은 마을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마을의 운치와 격조가 마을 사람들의 정서를 아름답게 하고, 그 정서가 위대한 정신을 가진 기업가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을길을 나섰다. 마을 앞 들녘의 벼들도 풍요롭게 일렁이며 필자 일행을 배웅해 주었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벼들이 자라고 있는 승산들녘의 풍경
승산 부자마을 골목길과 토담
승산 부자마을 길과 실개천
단아하고 기품있는 운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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