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진주를 찾은 시인들
[경일포럼] 진주를 찾은 시인들
  • 경남일보
  • 승인 2021.09.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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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진주를 찾은 옛 시인들이 생각난다. 백석과 김영랑과 정지용이다. 이 세 사람은 함께 진주에 온 게 아니라 따로 왔었다. 이들이 경험한 진주의 일이 무엇이었나, 살펴보자.

백석은 직장 동료이면서 친구인 신현중과 남행 열차를 탔다. 신현중이 고향(통영) 후배인 이화고녀 학생 박경련을 소개해주었다는 장담이 점차 어려워져 갔다. 그 역시 박경련에게 점차 호감을 느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계획한 상경 길을 변경했다. 진주로 가서 한잔을 하자고 했다. 1936년 1월 12일, 두 사람은 촉석루를 둘러본 다음에 요릿집으로 향했다. 지금의 진주경찰서 맞은편에 있던 ‘등아각’이었다. 권번 출신의 두 기생은 유성기 가수보다 더 구성지게 노래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가자 기생들은 신현중을 제쳐놓고 미남에다 모던보이인 백석에게로 눈길이 쏠렸다. 백석은 큰소리쳤다. 경성(서울)에 올 일이 오라면, 연락하라고. 정말 연락이 왔다. 두 아가씨는 경성에 일자리를 구할 심산이었다. 조선일보 기자인 백석은 일자리를 주선해준 듯싶다. 진주보다 수입이 좋아졌다고 했다.

1936년 여름이었다. 김영랑은 강진에서 합천 해인사를 둘러보고 돌아온 자동차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오갈 때 진주를 지나쳤다. 그는 친구 박용철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행 중에 경상도 사람들이 친절했다고 한다. 진주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아침에, 촉석루와 논개 사당인 의기사에 들렀다. 맑은 남강 물에 손을 넣어 세수를 했다. 진주의 여기저기에는 아침부터 기생들의 습창, 즉 노래를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청각적인 데 예민한 김영랑이 이를 놓칠 수가 없었다. 사실은 엄밀히 말해, 습창이라기보다, 아침의 잠긴 목을 푸는 소리이다. 그도 인정했듯이, 이런 소리는 다른 곳에선 거의 듣기가 어렵다. 기생의 아침 목 푸는 소리. 지금도 진주 지역에선 대를 이어서 구전되고 있는 얘기다.

시인 정지용이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5월에 진주를 방문하여, 취재하고 경험한 것을 연작 수필 다섯 편의 형식으로 신문에 발표한 일이 있었다. 이 글이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주로 진주의 기생 문화와 관련한 얘기들이다. 그는 조선 후기부터 번성했던 진주의 기생 문화가 쇠운머리에 이르렀음을 증언하고 있다. 요지는 이렇다. 진주 기생들이 접대부로 전변해 요릿집에서 야근한다. 지주와 관원의 세월이 가자, 이들은 부산으로 몰려갔다. 진주는 이제 색향이 아니다. 고요한 미망인 이상으로 쇠약하다. 말하자면, 전통 예술의 수용자였던 지주는 이승만 정부의 농지 개혁으로 몰락했다. 기관장들의 위상도 좌우 대립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기예를 중시하고 계승해온 기생 제도의 하향 곡선은 이런저런 사회학적 배경에 따른 것이다. 그 이후의 산업화는 결정타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은 모습을 감추거나 삶이 지워지거나 했다. 백석은 해방 직후에 김일성을 추종했지만, 결국 그로부터 버림을 받아 수십 년 간 사실상의 유배생활을 했다. 김영랑과 정지용은 전쟁 초기에 죽음을 당했다. 이들은 진주의 기생 문화를 재구성할 수 있는 한 점씩의 흔적을 각각 남긴 것이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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