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료실에서 하고 싶은 ‘하얀 거짓말’
[경일춘추]진료실에서 하고 싶은 ‘하얀 거짓말’
  • 경남일보
  • 승인 2021.09.0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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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경상국립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진료를 하다보면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 경우가 있다. 20여년 전, 인턴말에 아버지가 췌장암이 전이된 상태로 진단되었을 때, 의사로서 처음으로 진실과 착한 거짓말 사이에서 고민했었다. 결국 집안 어른들 의견에 밀려 아버지께 병증을 제대로 말씀 못 드렸고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앓이를 했었다. 두번째는 둘째 임신 초기에 받았던 기형아 검사에서 뇌 기형 관련 수치가 높은 걸 알고 정밀 초음파를 시행하고, 태아 뇌에 혹이 있다고 들었을 때다. 초음파 검사에만 의존하면서 마냥 기다리는 것은 의사인 나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결국 정상변이로 확인이 되었고, 지금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간혹 아이들에게 치료 방법이 없는 불치병의 경우에는 차라리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모르고 있는 게 부모에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진단을 받은 아이가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 외에도 아이와 부모에게는 예견된 많은 시련이 있게 됨을 알기에 진실과 하얀 거짓말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한다.

병원에서 실습하는 의대생이 배워야하는 진료 중에 ‘나쁜 소식 전하기’가 있다. 주로는 암을 알리는 걸로 되어 있지만 실제 혈종 교수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암을 진단할 때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 그대로를 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진단명을 무덤덤하게 이야기해 주는 편이 오히려 환자나 보호자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경험으로 체득하게 된다.

나도 언젠가 지속적인 치료를 받던 불치병 아이 엄마가 아이 상태가 점차 나빠지면서 너무 힘드셨는지, 자신의 아이를 진단한 의사가 자기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 그 의사가 밉다고 말하는 걸 들은 일이 있다. 아, 이건 나한테도 해당하겠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는 말들을 했겠네. 그렇다고 환자와 가족들에게 병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게 의사라는 직업인데…, 씁쓸한 경험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에서처럼 아름답고 다정한 말로 수술 동의를 받을 수 없음은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나 심각한 수술을 받는 환자나 보호자는 알고 있으리라. 그렇게 좋은 말에만 하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누구에게 책임이 생길지…. 20년 넘게 의사를 해도 항상 고민이다. 환자에게 검사를 많이 해도 걱정, 안해도 걱정! 힘들고 어렵게 3차병원의 문을 두드린 아이와 보호자들에게 치료를 받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만 전할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최선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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