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난민은 난민이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경일시론]난민은 난민이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9.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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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아프가니스탄에서 ‘특별 기여자’라는 이름으로 390명의 난민이 최근 우리나라에 입국했다. 한국 정부의 아프간 활동에 말 그대로 특별한 기여가 있었기에 그들에게 부여된 이름이지만, 그들의 높은 기여도를 떠나 ‘특별 기여자’와 ‘난민’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일단 난민의 사전적 정의부터 확인해보자. 소위 난민이란 국제법상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이나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커서 모국의 보호를 원치 않는 자를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모국이 자신의 삶을 명백히 위협하여 더 이상 모국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을 난민이라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특별 기여자’들은 ‘난민’이라는 큰 범주에 들어간다.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의 모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살 수 없었다는 건 자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나서도 그들이 자신의 모국에서 공포를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 정부에 대한 특별한 기여가 어느 정도인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터를 버리고 이렇게 먼 타국까지 떠나올 리 만무하다. 그런데 왜 정부는 이들에게 ‘난민’이란 자격을 주지 않고 ‘특별 기여자’란 이름을 주었을까? 물론 그들이 우리 정부의 아프간 활동에 많은 공로가 있었으니 그들을 ‘특별 기여’라는 명목으로 인정한 것인데, 이것은 한마디로 자격의 업그레이드, 난민과의 일종의 선 긋기는 아닐까.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순간 벌어질 수많은 일들,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우려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몇 년 전 일이다. 예멘 난민들이 대거 제주도에 입국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멘 난민 수용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하면서, 그들을 과연 난민으로 수용하는 게 마땅한가 하는 논의부터, 유명 배우의 난민 수용 지지 선언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그 당시 484명의 예멘 난민이 우리 정부에 ‘난민 자격’을 신청했다. 그들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는 고작 2명 전체의 0.41%에 해당한다. 단순 불인정은 56명, 자진 출국 등 직권 종료는 14명이고, 인도적 체류 허가를 매년 갱신하여 득함으로써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원은 412명이다. 물론 주권국가에서 문제적 인물들, 특히 테러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난민 신청을 거부하거나 자진 출국을 권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이면서 0.41%라는 난민 인정 비율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박해와 전쟁의 공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난민을 신청한 이들을 인정하지 않은 건, 더 많은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거나, 혹은 우리 사회에 널려 퍼져 있는 무슬림에 대한 혐오일지도 모른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난민은 자국에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공포와 위협 때문에 난민이 된다. 그 공포는 계급, 신분, 종교, 인종, 사상의 차이 등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난민들이 다른 나라로 난민 자격을 신청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프간이나 예멘에서 온 이들을 난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모국을 탈출한 가장 큰 이유가 정치적, 종교적 박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난민이라고 부르고 받아들이면 우리 삶이 당장 테러의 위험에 노출될 것처럼 두려워한다. 이 공포는 곧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혐오로 치환된다.

공포는 무지(無知)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밤길을 걷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길고양이는 무섭지 않지만, 홀연히 등장하는 사람은 무섭다. 그곳에 있을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민은 다르다. 난민이 된 이유와, 그들이 지금 이 나라에 있는 이유도 너무나 명백하다. 거기다 우리 정부는 그들을 ‘특별 기여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정부를 위해 일했던 이들에게 무슬림에 대한 공포나 혐오를 씌울 이유는 없다. ‘특별 기여자’라는 호칭이 그들의 공로에 대한 특별 예우를 갖추자는 조치가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난민’이라는 제대로 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맞다. 거기다 390명의 아프간 ‘특별 기여자’ 중 어린이와 영·유아는 46%에 이른다. 이들을 우리가 무슬림이란 이유로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생각할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70여 년 전, 이 땅에 사는 모든 한국인은 어쩌면 난민이 될지도 몰랐다. 한국전쟁으로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범위를 넓힌다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수많은 피난민들 역시 난민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고향 땅을 버린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경남은 이들 난민들을 온몸으로 따뜻하게 받아준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내력에 비추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특별 기여자’들에게는 난민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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