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나의 두 은사님을 생각하다
[경일포럼]나의 두 은사님을 생각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9.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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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대학에 들어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년이 한 학기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생활을 뒤돌아보니 대학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은사님 두 분이 생각난다.

두 분은 바로 짐계 려증동 선생과 빗방울 김수업 선생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가장 먼저 눈에 뜨인 두 분 선생이다. 두 분의 강의와 연구와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놀라고 감탄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모시 적삼을 입으시고 연구실에서 연구하시던 짐계 선생의 모습, 늘 빈틈없이 단아한 모습으로 한 점 흐트러지지 않으신 빗방울 선행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엇보다 두 분은 한글(배달글)과 우리말(배달말) 사랑이 남달랐다. 두 분은 경상대학교에서 전국 어느 대학, 누구보다도 배달글, 배달말 사랑에 뜻을 같이하셨다. 그래서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의 배달말 학풍은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일찍이 국어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그 시대에 오늘날 이른바 교과교육학인 국어교육학을 이 두 분이 올바로 세우셨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육과정은 국어국문과와 크게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두 분은 국어교육과의 교육과정을 국어교육의 이름에 맞게 바꾸었으며 교육 내용도 현장 교육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강의를 하셨다. 짐계 선생의 《국어교육론》이나 빗방울 선생의 《배달말 가르치기》란 저서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것이 50년 전 1972년의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학부나 교육대학원 졸업논문은 모두 현장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그대로 쓰도록 했다. 그래서 《배달말 가르침》이라는 학부 졸업논문을 책으로 내기도 했다. 졸업생들은 교사가 되어 대학에서 배운 그대로 수업을 했다. 그러자 학생 중심의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던 당시 많은 관리자들이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 출신 교사들을 질책했다고도 한다. 이런 소문이 나면서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는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두 분은

짐계 선생이 전통 보수적 이념이라면 빗방울 선생은 진보적이고 개혁적 이념을 가지셨다.

짐계 선생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직관력으로 세상과 학문을 판단하셨다면, 빗방울 선생은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셨다. 짐계 선생이 국학과 중국 사서 삼경의 한학이 바탕이 되셨다면, 빗방울 선생은 가톨릭을 기반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이 바탕이 되셨다.

짐계 선생은 부왜 역사용어를 바로 잡아야 하고 제멋대로 쓰는 가정언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평생 주장하셨고, 빗방울 선생은 전국국어교사 모임과 함께 참국어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와 강의를 하셨다. 그리고 진주문화연구소를 만들어 진주의 전통문화를 살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셨다. 짐계 선생은 ‘친일’이 아니라 ‘부왜’라는 말을 널리 알렸으며, ‘한일합방’과 ‘독립’이 아니라 ‘경술국치’와 ‘광복’임을, ‘을사보호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임을 ‘갑신정변’이 아니라 ‘갑신난동’이라는 등 수많은 식민사관의 역사용어를 바로 잡으셨다. 그리고 감히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독립신문이 한 때 부왜기관지였고 서재필까지 부왜했다고 주장하신 만큼 학자로서 강단을 가지신 분이셨다.

짐계 선생은 지나치게 고고하고 고집스러운 만큼 말년이 외로웠다면 빗방울 선생은 현실적인 만큼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고 기림도 많다. 그래서 짐계 선생의 기림이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세상에 누가 자기의 은사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이 두 분이야말로 연구와 교육과 인품에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다. 이제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저승에서 두 분이 서로 사이좋게 만났으면 좋겠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이 두 분께서 이루어 놓으신 그 높고 높은 배달말글 사랑의 학풍을 조금도 이어가지 못한 것 같다. 제자의 한 사람으로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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