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그님은 어디 뫼(山)에 있을까
[경일춘추]그님은 어디 뫼(山)에 있을까
  • 경남일보
  • 승인 2021.09.1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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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달 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말(言)에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고 그 언어는 생각을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그리고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동시 삶의 질을 높이기도 한다. 그런 정의를 내리는 순간, 빛바랜 편지 한 통이 다가왔다. 그 글의 보석함을 여는 순간 봉투에 ‘서울시 금천구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1272○○○(드림)’이라는 필체가 후다닥 10년이 훨씬 넘은 세월 속에서 달려 나와 주었다.

‘제는 사업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법의 제도권을…, 현재 서울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 중인 46세○○○입니다. 이곳 프로그램 중, 이승하(중앙대)교수님의 시 쓰기교실이 있는데 그 강좌에 참여합니다.…지금은 비록 음지에서 두서없는 글을 마치며, 2009년 6월 14일○○○드립니다’.

필자가 지금보다 훨씬 젊은 날, 하루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우고 신 새벽 ‘거실 풍경’이라는 시 한편을 적게 되었다. 그때 이 시로 수업을 하게 되었단다. 48장의 풍경, 그 바람을 밤새 데리고 놀다가 새벽에 여자 방을 불쑥 뛰어 든다/아랫목에 묻어두었던 밥 한 그릇 다 비웠는데/지독한 니코틴 냄새 귓속을 간지럽히며 /영화관 길 열어 놓고 놀자고 한다 부유하게시리…그 새벽 벌레 떼 숲을 덮었다 /오래 묵은 한 그루 나무에게로 옮겨/그 이파리 행복해한다 갉힌 제 몸만큼이나 /그 떨림, 남은 줄기로 가슴 여민다. ‘1연과 4연’ 그 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이 수감자는 그 여인의 집, 거실 풍경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같이 느꼈나보다. 이 시를 100번 이상 읽고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단다. 이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그다지 훌륭하고 화려하지도 않는 몇 줄의 글에 이렇게 마음까지 빼앗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세종대왕께서 한글 창제의 의미가 여기에 담겨 있다. 백성을 어여삐 여겨 말을 글로 옮겨 전혀 얼굴도 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소통을 주었다. 거실풍경이라는 글 화원을 만들어 내재되어 있고 진정성 있는 향기를 풍기게 했다. 세상을 비관했던 자아가 글(詩)이라는 묵향에 취하여 지나온 삶을 새로움으로 탄생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세종의 애민사상이요 그것이 거실 풍경을 글로 담을 수 있는 여인의 붓 향기가 아닐까? 낙엽이 신발 끝에 뒹굴고 그 그리움을 움켜쥐는 가을 하늘은 너무 청아해서 눈이 아리는 날이다. 그런 날이면 그 편지 속, 사내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님은 아마도 지금은 그의 이름 석 자가 달빛에 촉촉이 젖어드는 길을 걷고 있겠지.

박행달 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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