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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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9.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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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사천을 노래한 현대시인들의 노작들(6)
이번에는 박재삼문학상 수상자들의 시를 읽어보려 한다. 이 화사집 속에는 여섯 사람이 등장하는데 수상자 중에서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더러 있어 보인다. 전국적으로 지자체가 주는 전국 단위의 문학상 운영에 있어 시상 이후의 수상자 지역 참여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만 지자체별로 그 실적이 저조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잘하는 곳에는 해마다 동인지 수준의 작품집을 모범적으로 내거나 시화전, 낭송회를 하거나 김삿갓문학제와 정지용문학제 같은 데서는 아예 수상자의 대표작으로 시비를 세워서 지역의 관광에 한몫을 해주기도 한다.

이시영 시인의 시부터 보기로 하자. 이시영은 1949년 전남 구례 출생으로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활동해 온 시인이다. 시집에 ‘만월’, 산문집에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 등이 있다.

“몇년 전 어느 봄날 박재삼 문학상 받으러 삼천포 갔을 때 뒤풀이겸 저녁상 자리에서 딱 마주친 늙으신 아주머니 한 분, “박재삼 오뉘분 맞아요?” 했더니 수저를 들다 말고 한참을 고개 떨군 채 가만히 계시던 분, 어릴 적 어머니 장삿길 따라 머리에 생선 함박 이고 바지런히 진주시장 어물전 오명가명 했을 누부, 그 눈에 새벽 별빛은 얼마나 또 시렸을까”(이시영의 <삼천포>)

이시영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박재삼의 어머니에 ‘누부’까지 곁들여 진주 어물전에 오명가명 하던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삼천포에 오니 밥집에서도 박재삼의 ‘누부’를 금방 만날 수 있었음을 적고 있다. 시인의 의식 속에는 삼천포 하면 박재삼이 떠오르고 박재삼 하면 가난하게 살았던 시인의 개인사가 찍혀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상국의 <복국>을 읽어볼 차례다. 이시인은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박목월이 창간했던 ‘심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에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등이 있다.

“북쪽에 집을 두고 하루를 왔다/ 문득 남쪽 섬바다가 보고 싶어/ 시절은 보리 익는 유월/ 삼천포 축항머리 오는 저녁에/ 아는 사람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래도록/ 발전소 굴뚝을 바라보다가/ 손님이 드문한 집을 찾아들어/ 손마디보다 어린 복국을 먹었다/ 나라는 작아도 다시 못올 것 같아서/ 한 그릇을 다 비웠다”(복국, 삼천포에서)

복국을 말하니까 서정주가 한 50대쯤 되어서 월간 여성동아 <고향 가는 길>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고향에서는 복국도 안심하고 먹는다”는 그 말이다. 이상국 시인이 온 삼천포는 고향과 같아서 복국도 한 그릇을 다 비우는 것일 듯하다.

이어 고영민 시인 차례다. 고영민은 충남 서산 출생으로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에 ‘악어’, ‘봄의 정치’ 등이 있다.

“마루가 노랗다/ 손으로 쓸어내고 앉는다/ 쓸어낸 손바닥이 노랗다/ 돌계단도/ 마루 한 구석의 걸레도/ 개밥그릇도/ 물그릇도/ 재재재, 올려다본/ 어린 제비새끼 주둥이도/ 노랗다”(다솔사) 아마도 시인이 바람 신나게 불고 간 뒤에 다솔사에 간 듯하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손 끝에는 노란색 먼지가 일어난다. 송화 가루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노랗다의 일관성이 시를 시답게 해준다.

이정록은 <사천 매향비>를 발표한다. 1964년 충남 홍성 출생이다.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빕니다/ 향목(香木)을 묻으며 미륵보살이 오시리라 믿습니다/ 1387년 4100명이 결계하고 합장합니다/ 향기는 물속에 닿을 수 없으니 침향沈香으로 모십니다/ 향나무 가지와 몸통은 땅속으로 파고들 수 없으니/ 뿌리가 닿았던 속보다 깊이 향목을 묻습니다”

이 시는 매향비에 얽힌 이야기를 풀고 있다. “내세에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날 것을 기원하며 향을 땅에 묻고 세우는 비”를 매향비라 한다. 사천 흥사리 매향비는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 있는 고려시대 비석이다. 1978년 3월 8일 대한민국 보물 614호로 지정되었다 사천 매향비 자리는 바다에서 인접했을 터이나 지금은 20, 30리 정도 바다가 멀리 떨어져 있다. 서양의 경우도 그렇다. 터키의 에페소스 같은 고대도시도 항구였지만 지금은 자동차로 좀 달려나가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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