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가을 연가
[경일춘추]가을 연가
  • 경남일보
  • 승인 2021.09.1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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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택 (전 SK증권 상무)
 
 



풍성한 계절 가을이다. 아파트 화단에 대추는 붉게 익어가고 들판의 벼들도 무거워 고개 떨군다. 언덕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에 아침, 저녁으로 살짝 스산함을 느끼기도 하고 여름의 푸르름도 시간의 흐름 속에 노랗게, 붉게 물들어 가면서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풍겨준다. 이런 풍경도 세찬 바람을 만나면 낙엽으로 뒹굴게 되고, 우리에겐 외로움, 쓸쓸함 그리고 서글픔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대수롭지 않은 일도 예민해지는가 하면 우울함이 스며오기도 한다. 지나온 세월을 나름대로 보람 있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해보지만, 정작 남은 건 아무것도 내 손에 잡히지 않고 흘러간 세월에 한숨만 나온다.

인간이 이처럼 나약해질 때면 누군가에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 대상이 친구, 부모님 아니면 선배 등 누구든 관계없이 자신에게 위안이 되어 힘을 얻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던 일들 그리고 후회 속에서 새로운 다짐을 해본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매년 이 맘 때쯤이면 필자는 돌아가신 어머님이 한 없이 생각이 난다.

대학 4학년 때인 1987년도 가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고향 마을로 들어오는 큰 길 양쪽에 예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코스모스 꽃이 만발해 있었다. ‘누가 이렇게 정성을 들여 온 동네를 꽃밭으로 물들여 놨을까?’ 생각하며 고마운 맘을 가지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 가을 겨울이 지나고 코스모스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신록의 계절 봄이 왔을 때 아름다운 꽃길을 만들었던 그 분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운 좋게 필자가 취업이 되어 집을 떠나기 위해 이삿짐을 싸면서 나는 사소한 문제로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많이 서운하셨는지 눈물을 흘리시면서 “야 이 놈아, 우찌 그리도 인정이 없노 나는 그래도 니가 졸업해서 좋은데 취직도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 풀리라고 온 동네에 코스모스 씨앗을 뿌리고 꽃이 활짝 피도록 얼마나 정성을 들여 가꾸고 공을 들였는데 니가 그럴 수가 있나?”라는 그 말씀에 할 말을 잃었고 그때 필자가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가슴이 저미도록 맘 깊숙이 스며있다.

부모의 맘이 이런 것일까? 아가페적인 사랑 앞에 고개 숙이며 당신의 그 크신 사랑과 깊은 맘 되새기면서 다짐해본다. 살아생전 어머님의 생각이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자식으로 길 옆에 핀 코스모스처럼 예쁘게 살아가겠노라고.

임우택 전 SK증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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