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스승
[경일춘추]스승
  • 경남일보
  • 승인 2021.09.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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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사천시의원)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쇤지 일주일이 지났다. 추석 전 태풍이 왔으나 다행히 둥실한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정확한 방향은 예측할 수 없으나 추석 쇠자 다시 또 슈퍼급 태풍 ‘민들레’ 소식이다. 올가을은 태풍이 왜 이리 잦고 기승을 부리는지…. 시절이 하수상하니 마음은 천근만큼 무겁고 스산하다.

필자는 그간 적조했던 분들을 찾아뵈면서 추석 연휴를 보냈다. 그 중 필자가 명절 등 특별한 날이면 찾아뵙는 스승이 계시다. 분별없는 글을 긁적거리던 문청시절 스승의 문하에 들어 2년 동안 시(詩)의 가르침을 받아 필자는 문단 말석(末席)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 연으로 입때껏 사제 간의 정을 이어오고 있다. 뵐 때마다 과분한 사랑과 삶의 오롯한 뜻이 담긴 말씀을 주시는 그야말로 “나를 이끌어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이시다.

올 추석도 예외가 아니어서 남편과 함께 스승을 찾아뵈었다. 가을 정취의 떨림이 있는 포구를 따라 스승의 서재에 막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하늘색이 변하며 천둥 벼락이 치고 세찬 소나기가 몰아쳤다. 한옥 마루와 잘 가꾼 채마밭은 삽시간에 엉망이 되었다. 갑작스런 소나기로 비설거지에 여념이 없으시던 스승의 굽은 등을 그 때 처음 봤다. 언제나 건강하게 곁에 계신 줄만 알았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젊은 시절 그 누구보다 강건하고 기개가 높으셨던 스승은 초로의 등이 굽은 모습으로 계신 게 아닌가. 서재에 들 때마다 스승은 뜻깊은 말씀을 주신다. 올 추석에는 조선 성종 연간의 유학자로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도학과 절의정신을 실천하는데 굽힘이 없었던 한재 이목(李穆, 1471~1498)에 대해 말씀하셨다. 28살의 나이에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돼 짧은 생을 마감한 이목은 평소 차를 즐겨 ‘차의 아버지’, ‘차의 신선’으로 불렸다고 한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결코 기개와 절의를 꺾지 않은 선생의 절명시를 읽어주시며 더하여, 스승은 이르신다. “지금 같이 혼탁하고 뜻이 없는 시절에는 한재 이목의 절의 정신이 각별하게 요구되며,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참회할 줄 안다, 참회할 줄 아는 사람만이 용서할 줄도 안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사람의 도리를 안다”고 이르신다. 스승의 태산 같은 말씀은 부지런함이 참회와 용서로 귀결되며 ‘사람의 도리’를 구하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스승의 서재 뜰을 지키는 범부채의 ‘정성어린 사랑’이란 꽃말처럼, 세상 모든 스승은 실로 장엄하고 우뚝한 ‘정성어린 사랑’이다. 그러므로 추석은 스승의 은혜를 새기는 둥근달이다.

김경숙 사천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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