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성장과 분배,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 망친다
[경일시론]성장과 분배,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 망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9.27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인류사회에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과 서로 돕고 사는 공존공생 중 어느 쪽이 문명의 진화와 발전에 더 크게 기여했을까? 성장과 효율을 의미하는 적자생존과 분배와 형평을 뜻하는 공존공생은 언뜻 대립되는 개념 같지만, 실제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보완관계에 있다. 산업사회 이후 확대 재생산 사회에서는 적자생존 원칙에 따른 인센티브 효과가 생산성을 더 높이고, 더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이 돈을 버는 과정에서 경제 성장과 발전이 추구됐다. 기업가 정신과 근로의욕을 발휘해 계속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결과적으로 분배를 통해 국민을 더 잘 먹여 살리고 삶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 중심의 적자생존 세계에서는 경제활동의 목표가 생산을 통한 이윤극대화에 있다. 개별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윤이 중요하고 사회전체의 입장에서는 생산이 중요하다. 이윤극대화 세계의 핵심은 가격기구에 의한 경쟁의 법칙이다. 누가 만들든 관계없이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만이 팔리는 냉정한 시장에서 개인의 이윤추구 동기에 따라 창출된 부가가치는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해 결국 사회전체의 이익으로 귀착된다. 토지, 노동, 자본, 기술, 정보 같은 생산요소들이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 댓가로 시장에서 그 몫이 지불된다.

분배 중심의 공존공생 세계에서는 경제활동의 최종 목표를 효용극대화에 둔다. 경제의 대원칙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나누어 가질수록 재화의 가치를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배부른 사람들이 먹는 고급 호텔의 상어지느러미 요리보다, 배고픈 사람들이 먹는 장터 순댓국 한그릇의 효용이 때로는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효용을 위한 분배는 조세, 보조금, 사회보장제도, 자선단체 등에 의한 보정적 소득 분배다.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에게는 ‘패자부활의 기회’를, 경쟁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된다. 이 보정적 분배의 경제적 순기능은 빈곤충을 완화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소비수요 안정을 통해 재생산이 촉진되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사회에서 ‘누구나 자칫하면 경제적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험기능을 한다.

또한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경쟁력을 상실할 경우의 불안감을 줄여 부당한 과당경쟁을 예방하는 효과들이 있다. 반면에 분배가 왜곡되면 누군가의 초과손실과 동시에 누군가의 초과 이익을 발생시켜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가격기능,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여야 할 시장이 임금 가이드라인, 담합, 노조 압력 등 ‘보이는 손’에 의해 일그러질 경우 시장기능이 훼손되며 그 사회의 총생산능력은 쪼그라들고 결과적으로 총효용도 감소하게 된다. 보정적 재분배가 과다하면 경제주체들의 경제적 동기부여를 약화시켜 삶의 기반을 근원적으로 붕괴시킬 수도 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는 총생산도 총효용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도한 사회안전망은 공짜심리를 유발해 가난에서 벗어날 의지를 상실하게 하고 삶의 근거를 뿌리째 흔들 수도 있다.

따라서 성장 없는 분배는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며, 효용 없는 생산도 아무른 의미가 없다. 적자생존과 공존공생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보완관계에 있다. 형평은 효율을 해치지 않으면서, 효율은 형평을 보완해 가는 사회가 생산 극대화를 달성하면서 동시에 효용 극대화를 이루는 최고선(the supreme good)을 추구할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다가는 이것 저것 다 망친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