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살어리랏다 3]괴산 농업회사법인 ‘뭐하농’
[그곳에 살어리랏다 3]괴산 농업회사법인 ‘뭐하농’
  • 백지영
  • 승인 2021.09.28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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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시골 살이…청년 농부 뭉쳐 바꾸다
[글 싣는 순서]
[1]청년 귀농인의 전남 강진 정착기
[2]전남 강진체류형 귀농사관학교를 가다
[3]청년 농부 거기서 ‘뭐하농’
[4]귀농귀촌 정보 한눈에 쏙 ‘귀농귀촌종합센터’
[5]경남, 맞춤형 정책으로 청년들에 귀농 ‘손짓’

 
뭐하농을 결성한 여섯 청년 농부. /사진제공=뭐하농

지난 3월 충북 괴산군 감물면에 큰 통창과 목조로 멋을 낸 개방형 건물 한 채가 문을 열었다. 비닐하우스와 밭으로 둘러싸인 평범한 농촌 마을에 들어선 팜카페(farm cafe·농장 카페) ‘뭐하농 하우스’다.

이곳에서 파는 음료·디저트는 커피를 제외하곤 직접 재배하거나 지역 내 농부들이 기른 농산물로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카페 옆 팜가든(farm garden·농장 정원)에서 기른 방울토마토를 설탕에 절여 음료로 만들어 내고 괴산에서 재배한 쌀로 쌀 라떼, 표고버섯을 이용해 표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식이다.

지역 농가는 물론 탄소 발자국이 적어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강점이 있지만, 굳이 ‘착한 소비’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더라도 고즈넉한 공간과 특색있는 메뉴에 개업 몇 개월 사이 지역 명소가 됐다.

◇여섯 청년 농부가 뭉친 까닭은=뭐하농 하우스는 괴산지역 농업회사법인 ‘뭐하농’이 만든 베이스캠프 격 장소다. ‘뭐하농’은 지난해 2월 괴산지역 20~30대 청년 농부 여섯이 ‘농부들이 생산해낸 생산물과 농부의 가치가 멋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농업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며 결성한 주식회사다.

귀농 부부 2쌍과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는 청년 2명이 모였다. 이들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국책 연구원, 조경 설계가, 국제회의 기획자, 파티쉐, 바리스타, 조리 전공 대학생 등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각자의 이유로 괴산에서 표고버섯, 유기농 채소, 쌀, 반딧불이 등을 기르며 나름대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던 이들이 뭉친 가장 큰 이유는 ‘심심해서’였다.

“저희 여섯이 모였을 때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괴산이 너무 재미가 없었거든요. 농부는 행복하고 멋진 직업인데 삶이 무료하니 휴일에 자꾸 서울에 다녀오게 되더라고요.”

이지현(34) 대표는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계속해 살고 싶은 지역이 되려면 괴산을 재미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핍된 문화적 요소를 채워 달라며 지역 사회에 제안해보고 떼도 써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들이 직접 나서자고 마음먹게 됐다.

이 대표는 “귀농 전 각자의 전문 분야가 다채로웠던 만큼, 서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만 하더라도 지역에 즐거운 일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주식회사 ‘뭐하농’은 각 농부가 회사에 메여 일하기보다는 주주로서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농부가 각자의 농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는 회사 스스로 굴러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실제 뭐하농 하우스 역시 이들이 고용한 직원 7명과 아르바이트생 8명이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만들어 낸다.

뭐하농 구성원이 전공을 살려 커피 원두를 고르고 바리스타 교육을 하거나, 팜카페·팜가든 시설을 정비하기도 하지만 이럴 땐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는 구조다.

◇농촌에서 2달, 어때요?=팜카페를 안착시킨 ‘뭐하농’은 지난여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행정안전부 사업인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에 선정되면서 농촌 정착 희망 청년 대상 교육을 시작했다. 귀농·귀촌에 관심 있지만 막막함을 느끼는 이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노하우를 비롯해 창업·창농을 가르치는 ‘두 달 살이’, ‘3박 4일 살이’ 프로그램 등을 마련했다.

농촌에서도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청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 와서 참 행복해졌는데, 누구도 농촌의 삶이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어요. 그냥 와봤는데 행복이 얻어걸린 셈이에요. 부모 세대 역시 도시에서 월급 받고 살아야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시골은 떠나야 하고 도시로 향하는 곳’이라고만 배워 왔지만, 막상 정착해보니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즐겁게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취업이 안 돼서 자괴감을 느끼거나, 회사에 다니고는 있지만 그 삶에 회의를 느끼는 청년들에게 농촌이라는 선택지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마음을 듬뿍 담아 두 달 살이 1기를 모집한 결과 곳곳에서 지원자가 나타났다. 1기 수료 청년 11명은 전원 농촌 정착을 택했다.

“참여자들이 행복해하셔서 저희도 행복했어요. 이분들은 저희를 디딤돌 삼아 괴산에서 쉽게 정착할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워하지만, 뭐하농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갈 친구들이 11명이나 생긴 셈이라 더 기쁩니다.”

참여자들 역시 뭐하농 두 달 살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양분을 얻어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1기 참여자 중 괴산 귀농을 택했지만 1년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고군분투하다 포기를 고민했던 안드로이드 앱 개발자 사례가 대표적이다.

두달살이를 통해 비슷한 도전에 나선 또래들을 만나며 눈에 띄게 밝아진 그는 농업은 그대로 이어가되 자신의 능력을 살려 농부용 앱 개발 사업도 병행하기로 했다.

뭐하농의 목표는 여느 회사들과는 다르게 ‘각 농부가 하고 싶은 일을 재밌게 펼쳐보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농사를 짓고 있는 만큼 회사를 통해서는 소득이 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현재 세워둔 꿈은 괴산에 터를 잡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는 청년들을 위해 ‘공유 주방’을 시작으로 ‘공유 오피스’까지 마련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와 비대면 소통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청년들 사이에서 굳이 도시에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며 “다양한 지역 청년들이 방문해 다채로운 작업·협업을 펼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지현 뭐하농 대표.

이지현 대표와 귀농 관련 일문일답.
-어떻게 괴산으로 귀농하게 됐나.

▲결혼 전 우리 부부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런데 결혼 후 1년 동안 평일은 물론 주말조차 회사 업무 때문에 단 한 번도 부부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내 삶을 살기보다는 회사의 필요 때문에 돌아가는 삶이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해서 결혼하며 꿈꾸던 삶을 이곳에서는 실현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는 학원을 전전하고, 우리가 회사에 잡혀 있는 동안 귀가한 아이는 혼자 집에 머물고…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소득을 올리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을 물색한 결론이 농부였다. 모아둔 자본금이 없었기에 수확 회전이 빨라 금방 수익을 낼 수 있고, 거래 단가가 높은 표고버섯을 재배하게 됐다. 마침 아버지가 은퇴 후 정착한 이곳 괴산이 버섯 작목반이 잘 갖춰져 초보 농사꾼 부부가 터를 잡기 적합했다. 내가 뭐하농 대표를 맡은 이후로는 농사는 남편이 짓고 나는 이곳 일을 전담한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충고는.

▲환상을 깨야 한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서 제대로 살아남은 다음에야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살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못 산다고 툴툴대지만, 그건 자신이 제대로 농촌에 정착하지 못해서다. 농사도 사업인 만큼 제대로 된 계획을 가지고 철저한 준비 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재무제표를 만들어가며 계획을 제대로 짜보면 3년 차까지는 제로썸(이득과 손실의 합계가 0)이지만, 4년 차부터는 수익이 늘어 흑자 전환이 되고 정착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온다. 막연한 환상만 품은 채 초기 3년을 버티다 나가떨어지는 것과 이러한 계획 아래에 수익이 적은 1~2년차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귀농·귀촌 정책 중 보강됐으면 하는 것은.

▲우리 부부는 귀농하며 3년간 매달 청년 농업인에게 100만원씩 지원하는 ‘창업 청년농 지원책’ 도움을 받았다. 그 덕분에 나 역시 가장 힘든 초기 3년을 버틸 수 있었다. 다만 최근 귀농귀촌 희망자 대상 ‘청년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며 느낀 것은 각종 기관이 펼치는 사업들이 너무 귀농 희망자에게만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사업들도 농업인 육성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의 삶을 꿈꾸는 다양한 청년들이 많아진 만큼 이들을 보듬을 정책도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젊은 층을 농촌으로 유입할 수 있다면 농촌도 훨씬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텐데, 농촌에서 무언가를 도전해보고자 하는 청년들을 유인할 귀촌 정책이 적어 아쉽다.

글=백지영·사진=정희성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뭐하농 하우스 내부.
뭐하농 하우스 간판.
 
뭐하농 하우스 벽면에 소개된 농업회사법인 ‘뭐하농’ 구성원들.
이지현 뭐하농 대표.
뭐하농 하우스 내부.
자연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뭐하농 하우스 건물.
자연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뭐하농 하우스 건물.
팜가든에서 재배한 방울토마토로 설탕 절임을 담가 판매하는 한정 메뉴. 갈대 막대를 토마토 터뜨리는 용도로 곁들여 냈다.
뭐하농 하우스 내부.
뭐하농 하우스 내부 벽면.
뭐하농 하우스 내부 벽면에 건물 건축 과정에 담긴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뭐하농 하우스 내부 벽면.
뭐하농 하우스 옆에 마련된 팜카페가 봄·여름 작물 재배를 마치고 가울 작물 재배를 위해 일궈져 있다.
초목에 둘러싸인 뭐하농 하우스 외관.
 
뭐하농 하우스 옆에 마련된 팜가든. 카파에서 판매하는 음식에 이곳에서 직접 재배한 농작물 등을 이용한다. /사진제공=뭐하농
뭐하농 하우스 내부. /사진제공=뭐하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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