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중학생에게 피임교육 하면 안되나요?
[여성칼럼]중학생에게 피임교육 하면 안되나요?
  • 경남일보
  • 승인 2021.09.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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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진보당 진주시위원회 부위원장)
 



얼마 전 성교육을 출강한 학교 학부모로부터 항의전화를 받았다. 왜 중학생에게 콘돔을 보여주며 피임교육을 하냐는 것이다. 무엇이 이 학부모에게 불안과 화를 안겨주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중학생에게 피임교육을 하는 것이 성관계를 권장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일까? 피임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알아야할 필수 지식이다. 그 지식을 청소년기에 미리 알려주면 아이들이 자극받고 빨리 성관계를 하고 싶어질까? 학부모 성교육 현장에서 ‘아직 성에 관심 없는 아이에게 괜히 성교육을 해서 빨리 성에 눈을 뜨면 어떡하죠?’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부모들의 우려는 당연하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공적인 공간에서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유아부터 교육기관에서 성교육을 만나고, 생물학적 성기의 공식적인 명칭을 들으며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서적과 미디어를 통해 성교육을 접하고 있다. 부모세대는 언제나 앞서 나가서 아이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결정적인 질문, ‘난자와 정자는 도대체 어떻게 만나냐?, 사랑하는 두 사람이 동의하면 10대에도 섹스를 해도 괜찮냐’는 무시무시한 질문을 할까봐 조마조마하다. 성교육의 경험이 전무한 국회의원의 한마디가 저명한 성교육 도서를 회수하는 데 무리가 없었던 지난 일을 보면 우리 사회 학부모들은 어쩌면 성교육이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국제 성교육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포괄적 성교육”이라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전 교과에 성교육이 포함되어야 하며, 그 내용에는 생물학적 성의 차이는 물론 젠더, 인권과 섹슈얼리티, 결혼과 육아, 관용, 포용, 존중, 동의, 폭력과 안전 등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데 꼭 알아야 할 것들이 포괄되어 있다. 성적인 기술이 아니라 관점과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0대 자녀들이 무분별한 성관계를 할까봐 걱정이 된다면 지금의 성교육 방향에 대해서 나부터 공부하고 관점을 지닐 것을 권한다. 성교육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성적자기결정권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이란 성적인 행위나 대화를 내가 누구와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권리이다. 이는 당연한 권리이자 동시에 존중받아야 할 권리이다. 위력으로 인해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작은 신체적 접촉에도 언제나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성적불쾌감을 주는 행위는 성폭력이다. 이제 누구나 상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성은 단순히 쾌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인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강한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에 대한 궁금한 점과 지식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임신의 과정과 생명의 소중함, 부모되기의 마음가짐, 사춘기 몸과 마음의 변화를 미리 알고 대비하기,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한 피임의 방법들, 성병에 대한 위험, 연애와 이별할 때의 예절 등. 이 모두는 성에 대한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공적인 교육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학습되어야 한다.

성에 대해 죄책감부터 심어주면 자아는 억압되고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성교육은 자아형성과정에서 성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절하고 해소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정해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관계와 권리, 사랑, 책임, 배려, 존중이 포괄되어 있다. 그래서 성교육은 중요한 정치교육이다. 자신의 권리를 잘 알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공동체의 규칙을 지켜가며, 부당한 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말하고, 개선해나가는데 서슴치 않는 건강한 시민으로 기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부터 용기 내어 성교육을 만나보자.

전옥희(진보당 진주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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