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국정원장의 운신과 수난사
[경일포럼]국정원장의 운신과 수난사
  • 경남일보
  • 승인 2021.09.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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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호(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근 대선판에서 벌어진 소위 ‘고발 사주’와 ‘제보 사주’ 의혹의 중심에 박지원 국정원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고발 사주’는 검찰과 야권 유착의 문제로 삼권분립을 위협하여 국기문란으로 번질 개연성이 있다. 한편 ‘제보 사주’는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의 연결고리에 조성은씨가 있고, 조성은씨의 배후에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국정원장이 있는 것으로 비쳐 국정원장의 국내 정치개입 논란이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심지어 박지원 국정원장이 “호랑이의 꼬리를 밟지 말라”며 “모든 것을 내가 잘 알고 있다”라고 한 협박성 발언에 야권은 국정원장의 정보력을 이용한 국내 정치개입이라 고발을 한 상태다. 이에 앞서 ‘제보 사주’의 연결고리에 있는 조성은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9월 2일이라는 날짜는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날짜가 아니다”라고 말해 박 원장이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됐다는 것을 자백한 결과라고 야권에선 주장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과거 권위주의 시절 공공연한 정치개입과 사찰을 일삼았던 국정원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역대 국정원장 34명 중 실종 1명, 사형 1명, 징역형 14명으로 절반 가까이가 수난의 역사를 쓰고 있다. 5·16 쿠데타의 주체 세력으로 1961년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후 초대 부장을 지낸 김종필 씨도 1980년 5·17조치로 부정 축재자로 몰려 한 달여 동안 구금과 함께 재산 헌납을 강요당했다. 정치사찰 등 악명 높았던 김형욱 부장은 1969년 3선 개헌 후 10년 동안 미국과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7·4 남북공동선언’을 끌어낸 반면, 김대중 납치사건의 주역이었던 이후락 부장도 ‘5·17 조치’ 이후 한 달여 동안 구금 생활을 한 후 재산 헌납을 강요받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사 동기인 김재규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후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사형이 집행되었다. ‘12·12 사태’로 실권을 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한 후 대통령까지 지냈다. 문민정부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사면·석방됐다.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 바꾼 후 문민정부 시절에도 국정원장의 수난은 여전하여 권영해 부장은 ‘북풍 사건’으로 선거법과 안기부법 위반 혐의로 징역을 살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안기부는 국내 정치사찰 등 잘못된 관행에서 탈피하겠다면서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적폐는 여전하여 ‘국민의 정부’ 이래 14명의 국정원장 가운데 11명이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을 정도로 그 잔혹사는 끊어지질 않았다.

최근 박지원 원장의 행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 김만복 원장의 행보를 연상시킨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사건에서 자신의 정치적 행위(총선 출마)에 이용하려고 아프가니스탄 인질 석방 과정을 지나치게 홍보하며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는 등의 돌출 행위로 국민을 놀라게 하였다. 퇴임 후에는 친정인 국정원으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라 는 막강한 권력은 사용하면 할수록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역사의 경험법칙’이 말한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을 낮추고 소신을 지향(志向)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가 정보 수장들이 흑역사(黑驛史) 쓰게 된 것은 前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면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국내 정치개입, 정치사찰, 대통령 비자금 조성 등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난 권력 남용에서 기인하였다. ‘정보는 국력’이라는 말과 함께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할 때 국정원장의 수난사는 막을 내릴 것이다.
 
이웅호(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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