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Richard & Jones
[경일시론]Richard & Jones
  • 경남일보
  • 승인 2021.09.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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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지금과 같이 흔해 늘린 영상자료가 없던, 좀 과장하면 벽돌만한 건전지가 포로처럼 고무밴드에 묶여 듣던 ‘트렌지스트 라디오’ 조차 귀한 때였다. 거기서 나온, 지금까지도 경축행사나 영예스런 자리에 어김없이 들려오는 ‘Congratulation’을 듣고는 얼굴도 모른 채 그 가수를 동경하였다. 이후에 사진도 보고 영상으로 확인한 것이 중학교 때인 1970년대 중반이었다. 방한하여 이화여대 공연 때,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한 여학생이 그를 향해 속옷까지 던졌다는 사건의 주인공이 가수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다. 좀 ‘까불랑’하게 보였지만 그 발랄함에 매료됐던 한 때였다.

지금은 팔순의 동갑내기로 같은 영국출신의 탐 존스(Tom Jones)를 알게 된지도 꽤 오래된, 역시 그 즈음이다. 젊을 때 존스는 비교적 반항아적 풍모로 보였다. 그의 대표곡인 ‘Delilah(딜라일라)’, 조영남이 번안해 불러 인기를 끌었던 그 노래의 격정적 음색은 환희보다는 우울한 저항감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 존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로지 1인당 1000불 소득이 지상 목표처럼 새기던 1980년대 이전의 회상이다.

시골태생의 촌놈이란 이유일까. 잘 생긴 용모에 ‘님과 함께’같은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많이 불러 바람둥이 일 것 같은 상상으로 가수 남진을 싫어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말싸움을 한적도 있다. 반면에 고향과 부모 등 서정적 노랫말을 많이 낸 나훈아가 좋았다. 그의 ‘머나먼 고향’을 외국 친구들에게 들려주며, 고향을 그리는 유사한 서정의 미국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와 대비시켜 감상평을 청하는 억지도 있었다. 친구들이 미칠 광(狂)자를 붙여 그의 ‘광팬’으로 놀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의 노래말 대부분이 늘 머릿속에 오롯이 장착되어 있었다. 젊은날의 환상(喚想)이다.

남성의 댄스도 못마땅했던 옛과 달리, 지금 남진의 다감이 친숙해졌다. 반면에 그렇게도 애닳게 좋아했던 나훈아에 일말의 관심이 없어졌다. 최근의 ‘테스형’ 신드롬 이후 더 그런 것 같다. 간혹 뉴스나 화면의 그를 외면한다. 언행의 지나친 ‘오버’에서 오는 느낌이 까닭인 것 같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어떤 이유인지, 마음의 동경으로 닮고 싶었던 리차드에 거리감이 생겼다. 십여년 전의 사실로 확인되지도 않은, 그의 동성추문 뉴스가 작용됐을까. 노년기 그의 모습에 여유가 없어 보였다. 아이러니하다. 칙칙해 보였던 존스의 또 다른 히트곡인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듣노라면 참 편안해 진다. ‘고향의 푸른잔디’ 정도로 읽혀지는 곡명의 느낌과 달리 가사말은 사형수의 독백을 읊은 노래다. 그는 지금도 간간히 공연을 한다. 참 품위있게 늙었다는 느낌이다. 모두가 순전히 개인 취향의 회상이다.

변하고 바뀜에 스스로 놀란다. 시간이 지난, 연륜으로 관점과 포커스가 달라진 연유일 터이다. 장구한 삶의 여정이 그렇다. 어떤 노래의 가사는 익어가는 것으로 묘사됐다. 생각이 숙성되는 것이다. 어느 종교적 교리(敎理)는 자아나 성정의 불변을 담는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빼고는 형이상학이든 그것이 아니든 만고불변은 없다. 인간은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를 지나 사망때 까지 정서적 감성 혹은 심리적 발달이 이어진다. 생물학적, 사회문화 혹은 환경적 요인에 따라 변화한다는 말이다. 주위의 지인에 대한 감정도 그럴 것 같다.

대통령선거에 나온 후보들에 대한 인식 또한 예외가 아닌 듯 싶다. 지금까지의 증오나 미움이 애정과 사랑으로, 관심과 무관심의 교차는 얼마든지 있을 일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게 세상살이다. 더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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