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각하(閣下) 아니 되옵니다’ 없나
[경일시론]‘각하(閣下) 아니 되옵니다’ 없나
  • 경남일보
  • 승인 2021.10.0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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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위원)
조선시대의 대간(臺諫)은 사헌부(司憲府:관리비리감찰)와 사간원(司諫院)을 말한다. 사헌부는 관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대간이고, 사간원은 국왕의 독주를 간쟁(諫諍)하는 간관(諫官)이며 이 둘을 합해 대간이라 했다. 사헌부의 연원은 신라시대로 올라간다. 조선왕조시대에 사헌부의 장인 대사헌(大司憲:관리감찰·고발담당)이 차관급인 종 2품이지만 재상의 통솔에서 벗어났다. 대간이 비록 직위가 낮으나 역할은 재상과 동등했다.

대간은 조회 때 맨 앞의 반두(班頭)에서 목숨을 잃더라도 직언을 했다. 양반정권의 파수꾼이고, 청렴해야 했다. 뇌물을 받거나 권력을 이용, 재산증식을 해서는 안 되었다. 상피(相避)에 걸리기 때문에 친인척이 함께 대간에 있으면 안 된다. 당대의 최고의 인물이라야 했다. 가문 좋고, 문과에 (20~30대) 급제해야 하고 강직한 성격을 가진 젊은 사람이어야 했다. 세파에 물들지 않고 학문적 실력이 있는 양반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왕(王), 정승, 판서 등의 정치 잘못과 부정부패를 준열히 탄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단단한 실력과 칼칼한 성품을 가져야 했다. “아니 되옵니다”를 가장 많이 말한 대간들의 직언이 많은 나라가 바로 조선 500년의 역사다. 대간들의 직무는 언론 담당 관리다.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간이 탄핵하면 관료는 즉각 사표를 내고 물러가야 한다. 제3 사찰기관에서 조사해 대간이 옳으면 탄핵받은 관료가 물러가고, 사실이 아닌 모함이면 대간이 오히려 물러났다. 조사기간 동안 대간은 피혐(避嫌)이라 해 물러났다. 제3 사찰기관의 판결, 즉 처치(處置)가 있은 다음에 집무여부가 결정됐다.

조선시대 어전회의는 오늘날 장관들의 국무회의와 대동소이하다. 국정 경영능력이 요구되는 게 장관 자리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을 때도 좀 더 국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조정, 처리해야 한다. 정책도 국가경영에 보다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한다. 대간들과 중신들은 “전하(殿下), 아니 되옵니다”, “전하, 천부당, 만부당 하옵니다”, “거두어 주시옵소서”를 자리를 걸고 했다. 왕의 말 한마디면 삭탈관직 또는 유배를 가거나 투옥, 심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도 당시 대간들과 조정중신들은 굽히지 않고 소신을 폈다.

500년 동안 조선왕조실록의 어전회의 등에 “전하(殿下) 아니 되옵니다. 통촉(洞燭:깊이 헤아려 살펴주시옵소서)하여 주시옵소서”가 무려 6만 5000번 이상 등장한다.

어전회의 중신들 같이 소신 발언은 오늘날 국무회의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사극 드라마를 보면 지엄한 어전회의에서 명분이 옳지 않으면 망설이지 않고 대간들과 중신들은 직언을 했다. 왕조시대에 비하면 오늘날은 민주주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어전회의가 소신발언이 더 신랄하지 않았을까 여겨지는 것은 과문한 필자만의 편견일수도 있다. 분명히 잘못된 것도 대통령의 뜻대로 일사천리로 통과를 보면 국무위원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소신껏 헌신 봉사해야겠다는 각오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국무위원들의 “각하(閣下) 아니 되옵니다”는 아예 없고, 거슬리는 소신발언도 별로 볼 수 없다. 대통령 앞에서 여당 초선들의 쓴소리가 없어 실망스럽고, 국무회의도 생산적인 토론과 합리적 이견 제시도 용인되지 않는 일방통행이다. 일부장관은 “악역을 맡는 꼭두각시에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처럼 보인다. 공직자는 대통령 등 권력자에 충성이 아닌 국민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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