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공익직불제에 우는 농민
[경일시론]공익직불제에 우는 농민
  • 경남일보
  • 승인 2021.10.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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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이태 전 귀농한 지인 K씨는 며칠 전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 뉴스를 보고 또 한 번 혀를 찼다. 귀농하면서 구한 묵정 밭 3000여㎡을 과수원으로 일구며 지난 해 농업경영체등록을 마치고 농협 조합원까지 등록해 올 봄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공익직불금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했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구했던 그의 농지는 ‘과거 직불금 수령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공익직불금 대상이 아니라는 담당 공무원의 답변을 듣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 똑 같은 농지인데 ‘2017~2019년 중 직불금을 1회 이상 지급받은 농지와 2016~2019년 중 직불금을 1회 이상 지급받은 농업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익직불금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해괴한 논리인지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했지만, 이유는 모르겠고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김승남 의원이 농식품부 국감에서 K씨 경우처럼 억울하게 사각지대에 놓여 실경작자이면서도 공익직불금 지급이 원천 배제되는 농업인에 대한 적극적인 구제방안을 촉구했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과거 직불금 수령 이력을 삭제하면 실경작자와 가짜 농업인을 구분할 수 없다”는 논리다. 정부 스스로 농지관리를 엉망으로 하고 있다고 자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LH직원 투기 사건 이후 고구마줄기처럼 불거지고 있는 각종 농지 불법 투기 행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부실한 정부의 농지관리 책임을 국민, 그 중에서도 소규모 영세 영농인에게 떠넘기겠다는 발상이다. 정말 이상한 농정이다.

공익형직불제는 식품안전, 환경보전, 농촌유지 등 사람과 환경을 위한 공익 창출 유도 목적으로 농지면적 1000~5000㎡의 일정 요건을 갖춘 소규모 농가에게는 면적에 관계없이 연간 120만원의 소농 직불금을 지급한다. 그 외 농업인에게는 기준 면적이 커질수록 지급 단가가 낮아지도록 해서 ha당 100~205만원의 면적 직불금을 지급한다. 6월 말까지 신청해 오는 12월까지 지급되는 것으로 농민 기본수당 성격이다.

문제는 K씨처럼 과거 직불금 수령 이력이 없는 농업인들이 배제되면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밭농사·조건불리 직불금이 미미해서 또는 잘 몰라서 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농업인과 귀농자, 청년농업인 같은 신규 농업인들도 해당 농지가 아니면 농사를 짓고도 직불금을 받을 수 없다. 공익직불금은 시행 첫해 인 2020년 농업인 121만 9000명에게 2조 3564억원이 지급됐고, 직불금 수령면적은 112만 8000ha로 전체 농지면적의 72%에 해당된다. 나머지는 타 용도로 전용되거나 개발 또는 개발예정 등이 대다수지만, 여러 사유로 사각지대에 놓여진 농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익직불제 도입 이후 억울하게 직불금을 수령하지 못한다는 민원이 국민신문고에 1237건이나 접수되는 등 불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익직불제가 농업활동의 공익적 기능 증진에 기여하는 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라면, 실제 영농활동에 종사하는 농민들에게는 문제가 되는 과거 영농이력 같은 불필요한 제한 규정을 철폐하는 것이 당연하다. 청년농 육성과 농촌 인구 유입을 위해 정부가 앞다투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농민의 기본수당격인 공익형 직불금조차 받지 못하게 하는 진입장벽을 만들어 놓고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최소한 농업인의 기본소득권을 보장해 주는 농정이 첫번째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차기 정부에서는 더 이상 공익직불제에 우는 농민이 없기를 기대한다.

한중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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