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1]네덜란드 홍수 박물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1]네덜란드 홍수 박물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10.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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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1]네덜란드 홍수 박물관



지난여름 네덜란드 남부지방을 비롯한 벨기에와 독일 국경 지역에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수많은 피해를 입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터전을 잃었고 인명피해도 속출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독일과 벨기에 지역에서는 수십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단 한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해 지역의 주민들이 일기 예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미리 대피하였고, 홍수 경보 사이렌이 제때 작동하면서 사태를 신속하게 알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 가지 요인은 네덜란드인들에게는 항상 홍수에 대한 위험성과 대책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산(山.) 그 대신 자리하고 있는 것은 평평한 땅과 호수다. 그래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나지막한 구름은 마치 손끝에 닿기라도 할 것 같고 어딜 가든 만날 수 있는 수로와 운하를 카메라에 담으면 즉석 엽서가 된다.

처음 네덜란드에 발을 붙였을 때, 낮은 언덕조차 찾기 힘든 이 평평한 나라에서 물을 어딜 가든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 일 년 중 절반이 넘는데, 과연 홍수로부터 안전한 걸까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는 밤새 비바람이 몰아쳐도 다음날이면 평온한 아침이 찾아오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네덜란드는 나라이름에서부터 홍수에 취약하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낮다’라는 뜻인 Low 와 ‘땅’의 Land 가 합쳐진 네덜란드는 수 백 년 동안 물과의 사투를 벌인 전적이 있으며 사실 오늘날까지도 물과 맞서 싸우는 중이다. 특히 이번 여름의 폭우만 보더라도 예보보다 훨씬 많은 비가 동반된 경우였으니 지형적으로 홍수에 취약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긴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네덜란드에 살면서 주위로부터 물이 넘쳐 집에 들이 닥쳤다거나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해안가에 있는 집과 농지를 초토화 시켰다는 뉴스를 듣지 못했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사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나고 자란 네덜란드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이참에 네덜란드가 어떠한 방식으로 홍수를 막아내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홍수는 비단 네덜란드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 터. 물이라면 지긋지긋 할 것 같은 나라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길잡이가 어디 있으랴.



◇1953년의 그날

네덜란드가 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게 만든 큰 계기가 된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에 발생했던 대홍수였다.

1953년 1월 31일, 북해에서 만들어진 강력한 폭풍이 예사롭지 않았던 밤. 강한 바람은 바닷물을 남쪽으로 밀기 시작했고 바닷물은 좁은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의 해협을 빠져나가지 못하여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결국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던 네덜란드 서쪽 지역의 제방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수문위로 물이 넘쳤다. 홍수는 약 1800여명의 목숨을 빼앗아 갔고 수십만 마리의 가축이 물에 떠내려갔으며, 150.000ha의 평야가 그 모습을 감춰버렸다.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 홍수는 자연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오늘날에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각종 매체 등을 통해 빠르게 그 소식이 확산 되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큰 재해가 발생했다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알려지는데 시간이 걸리고 수습을 위한 지원 대책 마련이 빠르지 않았다.

지역적으로 대도시와 멀어 구조인력난 또한 시급했던 재난지역에서는 인근에서 활동하던 어부들이 먼저 손발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어부들은 작은 보트를 이용해 구조를 도왔고, 라디오와 연락하여 재난 상황을 알렸다. 이것은 곧 네덜란드 전역의 각종 기관과 수자원 관련부서, 적십자 등으로 퍼져나갔다. 피해상황이 알려지며 육해공군이 재난지역으로 파견되었고, 여성자원 봉사자들은 물이 빠져나가고 진흙탕만 남은 집들을 청소했다. 특히 이 소식이 전 세계적으로 보도 되자 수많은 국가들로부터 원조와 지원의 손길이 쏟아졌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에서는 수해지역에 목조로 된 조립식 주택을 보냈는데, 이것은 오늘날 까지도 마을 사람들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고된 재난

폭풍우가 네덜란드 서쪽 한 귀퉁이를 휩쓸 고 간 이후 그동안 홍수에 대한 위험을 매우 간과 해왔었다는 비난의 지적이 나왔다.

홍수 발생 이전부터 전문가들은 비교적 허술했던 네덜란드 남서부 지역의 제방을 우려하여 보수가 필요함을 주장해왔다. 안전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던 데다가 제방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며 제방 정비를 시행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전쟁 이후 역시 피해지역의 외부 경관을 복구하기 위해 제방 재구축 사업을 미뤄 홍수 피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다시는 홍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델타 프로젝트

홍수가 발생한 후 네덜란드에서는 1953년 델타위원회가 구성되어 델타프로젝트가 발표 됐다. 이 프로젝트는 북해를 마주하며 강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 지역을 홍수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 댐, 수문, 제방 등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이 계획의 첫 번째 목표는 서쪽 해안선을 줄이는 것이었다. 특히 가장 피해가 컸던 남서쪽해안의 제방을 높여 방어선을 재구축하는 것에 가장 집중했다. 강과 바다가 합류하는 지점에 댐을 건설하여 바닷물의 유입을 차단하는 것을 기본으로 실현시켰다.

그 중에서도 오스터스헬더(oosterschelde)에 만들어진 방벽은 500년 만에 한번 오는 초강력 태풍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히 설계 되었고 델타 프로젝트 중 가장 혁신적인 방조제라고 평가 받고 있다. 마에슬란트 방벽의 경우(Maeslantkering)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로테르담과 인접한 위치적 이유로 보통 때는 열려 있어 배가 드나들도록 하고, 폭풍해일이 예보되면 강 입구를 차단하는 스윙도어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델타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서쪽 해안선을 줄여 나가자 조그마한 섬으로 이루어져 있던 지역들의 접근성이 높아지게 되었음은 물론 관광소득까지 증대되어 관련 산업이 확장 되었다. 또한 바닷물이 담수가 되어 염분이 제한됨으로써 용수 공급이 용이해져 농업이 더욱 성장했다.

수많은 자본이 투입된 만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던 이 프로젝트는 수 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특히 댐과 배수시설 관련 분야가 더욱 발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큰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에 홍수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 진 것은 아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강수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해수면이 높아지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100년까지 해수면이 약1~2미터까지 증가할 수 있다며 끊임없이 홍수 대책을 고민하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박물관 둘러보기

로테르담에서 차로 50분정도 떨어진 오베르케르크(Ouwerkerk)에 위치한 네덜란드 홍수 박물관은 2001년 개관하여 관람객들에게 홍수의 위험성을 각인 시키고 관련 지식을 교육하여 홍수 예방에 힘쓰고 있다.

박물관은 총 네 개의 직사각형 콘크리트 건물로 구성 되어있는데 이것은 1953년 발생한 대홍수 때 붕괴됐던 제방 바로 위에 설치되었다. 유실된 대규모의 제방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영국 해군이 해안 요새로 사용했던 구조물을 원조 받아 대신했고 이것은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을 완전히 막아냈다. 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가져왔던 재해를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피해를 입지 않겠다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의지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물관의 건물에서 느껴진다.

박물관 내부의 어두운 실내 분위기는 당시의 상황을 더욱 실감 할 수 있도록 해주며 이 지역을 물로 부터 지켜준 방어벽 안에서 홍수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박물관은 홍수가 났던 날을 상세히 기록하고 이후의 재건 사업, 그리고 미래를 위한 대비를 다음세대와 같이 논의 하고자 한다. 또한 홍수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고 그날을 기억하며 항상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식을 국가와 국민에게 고취시키고 있다.



주소: Weg van de Buitenlandse Pers 5 4305 RJ Ouwerkerk

운영시간: 월-일 10:00 - 17:00

입장료: 성인 12유로, 아동 6.5유로

홈페이지: https://watersnoodmuseum.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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