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말까지 국내 수주량 1366만CGT...지난 2008년 1668만CGT 이후 최고치
수주점유율 42.2%로 중국과 격차 좁혀...친환경선박은 탄소중립 위한 중요 과제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로 꺾인 국내 조선산업 기세는 10년이 넘게 이어졌고,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보릿고개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주요 축이었던 조선업은 어느새 저물어 가는 산업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도시를 표방하며 성장을 거듭하던 거제시 역시 침체일로를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조선업 불황과 구조조정 터널은 2019년을 기점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 세계 선박시장은 2014년 이후 6년 만에 최대 규모로 확대되며 시황 회복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스마트화로 상징되는 조선산업 패러다임 전환은 국내 조선업계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 역시 지난 9월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하며 세계 1등 조선강국 실현을 위한 청사진을 내놨다.
어둡고 길었던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국내 조선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K-조선 재도약 전략’과 ‘거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알아본다. 편집자주
최근 세계 선박시장은 2014년 이후 6년 만에 최대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2014년 4566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였던 세계 건조량은 2016년 1402만CGT로 급격히 감소했다. 2019년 3009만CGT로 회복세를 보였던 세계 조선산업은 2020년 2264만CGT로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는 7월 말 현재까지 3021만CGT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올해 국내 조선 수주실적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1~8월 중 국내 수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5.2% 증가한 1366만CGT에 달했다. 이 수주실적은 같은 기간 기준 2008년 1668만CGT 이후 최고치다.
수주점유율 역시 42.2%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1위인 중국(44.9%)과의 격차는 크지 않았지만, 3위 일본(9.6%)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월별 기준으로는 올해 5월 이후 4개월 연속 전 세계 수주 1위를 차지했다. 2016년 이후 글로벌 선박시장에서 30%대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수주비율이 높아지면서 조선강국 코리아의 위상 역시 옛 영화를 되찾고 있다.
조선업이 국내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지난해 기준 수출의 3.9%(198억 달러)를 차지했다. 반도체 992억 달러, 자동차 374억 달러, 석유화학 356억 달러, 철강 266억 달러에 이은 다섯 번째다. 2019년 기준 제조업 고용의 4.1%(12만 명), 제조업 생산의 2.4%(37조원)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경제 기여도가 높은 산업이다.
하지만 수주 호조에도 불구하고 조선사 실적은 부진했다. 삼성중공업, 현재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빅3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합계는 -2조 9948억원으로, 지난해 -1886억원에 비해 적자폭이 확대됐다.
이 같은 수익성 악화는 선박가격의 20~25%를 차지하는 후판가격 급등에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후판 유통가격은 지난해 말 t당 70만원 수준이었지만, 중국 철강재 수출제한 정책 등의 영향으로 올해 7월말에는 t당 130만원까지 상승했다.
내년 조선업계는 글로벌 교역 증가, 환경규제 강화 등에 힘입어 양호한 수주실적을 이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유가 상승, 개방형 스크러버 이용규제 확산 등도 수주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형조선사들이 수익성 회복의 제약 요인으로 지목되던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올해 상반기 중 공사손실충당금 설정으로 선반영해 향후 수익성 역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산업 패러다임 변화, 경쟁우위 확보할 절호의 기회
탄소중립은 전 세계가 설정한 목표다. 이를 위한 산업 구조 재편은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선박연료유의 황(SOx) 함유량 상한을 3.5%에서 0.5%로 대폭 강화한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발효했다.
IMO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30년 해운의 탄소집약도를 2008년 대비 40%, 2050년에는 70%까지 감축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이를 위해 2023년부터 현존선 에너지효율지수(EEXI)와 탄소집약도(CII) 등급제 시행을 예고한 상태다. 현존하는 모든 선박은 선박 제원을 기반으로 계산되는 EEXI를 충족함과 동시에 운항실적에 따라 계산되는 CII도 매년 감축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국내 조선업계는 LNG 이중연료 추진선, LNG Ready 선박 등 친환경 선박 개발을 완료하고 시장을 장악해 왔다.
실제 지난 9월 국회는 국가별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정하면서 2018년 대비 35% 이상 줄이도록 하는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이에 따라 산업별 감축목표를 정해 관리하게 된다.
조선산업의 경우 2018년 건조량 772만CGT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향후 건조량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적절한 목표 설정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산업의 특성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전체 산업에서 조선산업이 배출하는 탄소 비중은 0.5%에 불과하고, 배출원도 선박 건조과정에서 필요한 전기나 시운전에 사용되는 연료, 도장시 사용되는 페인트 등이 대부분이라 감축 여력이 크지 않다. 그만큼 공정 전반의 에너지 효율 개선, 친환경 원료 사용 확대 등을 차분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선종인 벌크선은 중국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력이 중요한 고부가·친환경 선박을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올 7월 현재 고부가 선박인 대형컨선·VLCC·LNGC의 세계 발주량은 1446만CGT로 이 가운데 63%인 904만CGT를 국내기업이 수주했다. LNG·LPG선 등 친환경연료 추진선박 역시 세계 발주량 1014만CGT 중 66%인 670만CGT를 수주했다. 특히 대형 LNG운반선의 경우 세계 발주량의 97%를 싹쓸이 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 확대는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과 정부의 즉각적인 지원을 통한 선제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됐다.
배창일기자 bci74@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