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선퇴 (안채영)
빨간 사과에 달라붙어 있는
빈 껍질의 선퇴
너무 밝은 사랑을 택했었구나
사과는 또 어쩌자고
여름내 울고 갈 마음을
철없이 익어가는 계절에 들였었나
칠년을 기다려 이룬
짧은 동거
도망간 짧은 사랑
빨간 거짓말만 달려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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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퇴는 매미의 허물이다, 유충에서 매미로 변신하며 남긴 껍질이다,
뜨거운 날, 우렁찬 울음에 혹해서 모든 걸 받아들여 알을 생산하고 생을 마친 암놈의 슬픈 전신이다. 사과보다 더 붉은 사랑으로 여름을 달구었던 그대의 말씀이 모두 거짓투성이란 걸 알게 되어 빈 몸으로 겨우 벗어난 젊은 한 때의 장면이다. 속임수의 늪에서 보따리도 챙기지 못한 버선발로 도망 나온 한(恨)이다. 허구의 소설보다 더 지독한 생의 체험이다.
한여름 땡볕 사과나무에서 7년을 기다려 매미가 된 유충의 허물과 목액을 빨아 댕기는 매미에서 어떤 아픔을 대입한다. 술수도 능력이겠지만 누구의 삶을 헝클어지게 한 저 붉은 거짓말의 분노. 함께한다.
/주강홍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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