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무시무시한 ‘한 끗’ 차이
[경일시론]무시무시한 ‘한 끗’ 차이
  • 경남일보
  • 승인 2021.10.20 16:3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화투놀이의 일종인 ‘섰다’에는 ‘장땡’이 ‘광땡’보다는 ‘한 끗’이 높다. 3·8 광땡이 장땡보다 우선하는 지역도 있다지만 대체로 장땡을 최고로 친다. 속임수가 없다면 처음도 끝도 오직 받는 화투장 ‘패’와 상대와의 심리전으로 승부가 가려진다. 한 끗만 높아도 돈이든, 무엇인가를 건 전부를 싹쓸이하고, 진 사람은 모두를 잃는 룰이다.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에서의 집권여당 후보가 정해졌다. 현직의 최대 광역자치단체장이 선출됐다. 수려한 언변에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식견도 넓고, 콘텐츠가 다양하다.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순발력까지 갖춘 빼어난 후보라는 평가도 있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오늘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등극했다. 가히 스스로 불굴의 의지에, 하늘이 내린 운세가 따라 붙은 결과라 할 만하다.

불과 1년전, 그는 공직선거법이 적용되어 재판을 받았다. 경기도지사 선거가 있던, 2018년 그 후보의 친형을 불법적으로 강제입원 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확인하는 TV 토론회가 발단이었다. 친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한 적이 있느냐는 상대후보 질문에 그는 “그런 일이 없다”고 답했다. 그 대답이 거짓이냐, 진실이냐? 하는 것이 범법 여부를 결정짓게 됐다. 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유죄로 벌금 300만원 벌금형이 내려졌다. 당선 무효형이다. 그러나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은 무죄였다. 무죄 판단 대법관 7명, 유죄 판단 대법관 수가 5명으로 판가름난 것이다. 그로써 경기도지사 자리가 유지되었다.

다수인 7명의 무죄 취지는, 상대 후보자의 질문 혹은 의혹 제기에 해명 과정에서의 답변이 명징한 허위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소수인 5명은 선거에서의 거짓말과 허위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며 유죄 취지를 담았다. 축약하면, 이 후보의 답변이 허위이긴 하지만 허용될 범위라는 것이다. 소극적 거짓말은 괜찮다는 뜻이다. 그 판결로 그의 대권가도에 굴곡이 사라진 셈이 되었다. 당내 쟁쟁한 경쟁 후보였던 서울시장, 충남지사의 낙마도 그 탄탄대로를 정비시키는 기폭이 되었다. 그들은 각각 성추문과 성폭행 혐의로 자살했거나 수형자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종심을 다시 들여다 본다. 유무죄를 달리한 대법관의 견해가 팽팽했었다. 꼭 반 반인 5명과 5명으로 나뉘었다. 여기에 가장 고참이라는 한 대법관이 평결의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 그의 논지는 토론회에서의 거짓말은 용인될 수 있다는 취지가 근간이었다. 이로써 6:5로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이런 비유가 사법부에 대한 불경으로 비칠까. ‘한 끗’ 차이다. 세상 이치는 다르지 않다. 다수에 힘을 싣는다는 대법원장 평결 관행이 더해져 7대 5로 확정된 것이다. 7명은 꽃길을 깔았고, 반면 5명의 대법관은 현직인 지사 자리 박탈에 피선거권 상실 판단을 내렸다. 그 간극이 너무나 엄청나다. 무죄를 결정 지은 그 대법관은 지금 천지를 뒤흔든 ‘화천대유 대장동’ 사건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돈 받고, 봐 준 재판거래 의혹이 나왔다. 국회에서는 100억원 이상의 변호사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연전에 개봉한 노부부의 치매를 다룬 영화 ‘로망’ 줄거리가 스친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환희와 행복의 로맨스를 뜻하는 프랑스말인 ‘로망’과 지옥같은 질병인 알츠하이머, ‘노망’을 ‘한 끗’ 차이로 풀이하며 작품을 설명한 적이 있다. 영예의 유력 집권당 대통령 후보 등극,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하는 사실상의 정치 낭인 전락은 극히 미세한 한 끗에서 결판이 났다. 세상에 행과 불행을 가르는 한 끗 차이가 너무나 많다. 각각 우쭐과 기고만장, 위축과 인생파멸을 부른다. 쓸모 없어진 소수의 가치를 진중히 새겨 본다.

 

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준 2021-10-25 02:01:23
재밋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