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소리 없는 ‘비난'의 아우성
[대학생칼럼]소리 없는 ‘비난'의 아우성
  • 경남일보
  • 승인 2021.10.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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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래 (경상국립대학교 신문방송사 편집장)
 


지난 일요일 밤, 본가인 부산을 뒤로하고 진주행 무궁화호를 탔다. 짐을 내려놓고 좌석에 앉자 뒤이어 들어오는 작은 아이와 어른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 내복을 입고 있던 아이는 보호자의 손을 잡고, 좌석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열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뚝”, “쓰읍”, “코 자자”, 아이와 함께 있던 보호자는 계속되는 울음소리가 곤란했던지 조용히 다그쳤다가, 재워보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대뜸 내 옆 승객이 아이 쪽으로 뒤돌아 눈을 흘기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멎었던 울음소리가 커질 때마다 한숨으로, 눈빛으로, 때론 부산스러운 움직임으로, 말 한마디 없이 온몸을 써가며 아이에 대한 불편함을 표했다.

결국, 유아 동반석도 없는 무궁화호에서 보호자는 아이를 안고 객실 안팎을 수차례 오갔다. 그러자 옆 승객의 뒤척임도 멈췄다. 나는 얼마 안 가 열차에서 내려야 했지만, 집에 도착해서도 나와 아무 인연 없는 그 아이가 생각났다. 노키즈존이나 아동 혐오 따위의 논란이 있을 때마다 약자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말하는 목소리들이 화가 났는데, 논란을 넘어 내 눈으로 작은 사건을 목격하니 난처했을 그들에게 이입돼 씁쓸함을 느꼈다.

누구에게나 타인의 선명한 적대심을 열심히 못 본 척하며 위축됐을 순간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의식 너머를 들여다보면, 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적대심도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나의 경우, 나와 어울려 다니면서도 나를 싫어했던 한 아이를 기억한다. 나는 6살이었다. 나와 다른 급우를 비교하고, 나에게 한숨 쉬었던 한 선생님을 기억한다. 나는 9살이었다. 나는 어렸지만, 그들이 나에게 보냈던 한숨과 눈빛과 움직임이 어떤 감정을 의미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성장을 마친 우리는 종종 어린아이의 마음을 모두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굴곤 한다. ‘어차피 다 크면 기억도 못 할 텐데’, ‘애는 모를 걸, 보호자한테만 눈치 주는 거지’ 식이다. 그러나 여전히 당신의 기억 속에 적대심을 눈치챘던 어린아이가 살고 있지 않은가. 모진 눈빛을 보냈던, 성숙하지 않았던 그 어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러하듯이, 지금의 어린아이들도 어른의 조용하고 맹렬한 비난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겉옷 없이는 문밖으로 한 발짝 떼기도 두려운 겨울이 오고 있다. 아이들을 마주친다면 먼 나중 그들의 기억 속에 2021년의 겨울이 시리게 남지 않도록, 따뜻한 어른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이나래 경상국립대학교 신문방송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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