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경상국립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추석이 지나갔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끼리도 모이기가 여의치 않아 조용하게 지나 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추석 전 날부터 시끌벅적 온동네가 야단법석이었던 어릴 적 추석 풍경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그 때는 명절이면 찾아오는 손님도 친척들도 많았다. 설탕이나 과일 등을 선물로 주고받느라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어머니는 전날부터 전이나 떡을 하느라 명절준비에 바쁘셨다. 또한 시간이 부족한 와중에도 “깨끗하게 해서 조상님을 봬야한다”며 딸들을 동네 목욕탕에 데리고 가 목욕을 시키셨다. 우리는 그 일이 귀찮았지만 어머니가 추석 새 옷을 사 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꾹꾹 참았다. 그 일이 끝나면 어머니께서는 늦은 시간까지 단술(식혜)을 내리고 밥상과자를 만드셨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식혜 내리는 일이 시간이 많이 걸려 새 옷을 사러가는 시간이 없어 안달했던 기억이 난다.
정성을 들여 떡을 만들고 과자를 만들면서 서로 정답게 얘기를 나눴던 풍경은 이제 아련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식혜나 송편처럼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은 사라지고 없다. 우리의 명절이 그야말로 서양식 할리데이(Holiday)처럼 변해가는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든다.
서인국 교수의 ‘행복의 조건’에 나온 구절 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함께 먹을 때가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또한 수세기 전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의 가장 큰 쾌락의 조건에도 ‘함께 할 친구’가 필수조건 인 걸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그 무엇은 서로의 온기가 아닌가 싶다.
깊어가는 가을, 명절날 만나지 못했던 유년의 친구가 있다면 이번 주말에는 연락을 취해 맛난 식사 한 끼 하면서 옛 생각에 젖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서지현 경상국립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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