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2]에센 폴크방 미술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2]에센 폴크방 미술관
  • 박성민
  • 승인 2021.10.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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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때 같으면 도시를 여행하다가 그 지역의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며 여행에 활력을 더하는데, 오늘 소개할 미술관은 이러한 방식과 정반대였다.

다시 말해서 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 여행을 선택 한 것이다. 사실 ‘에센’이라는 도시에 대해서는 음악과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에센 폴크방 예술대학이 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아는 바가 없었다. 게다가 에센은 독일 여행 시에 이용하게 되는 프랑크푸르트나 뮌헨 공항과 꽤 거리가 있는데다가 수도 베를린에서는 차로 약 6시간이나 이동해야 하는 탓에 접근이 그리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과거 이 도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독일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루르 공업지대의 중심 도시였다. 특히 탄광산업이 크게 발달했던 촐페 라인 탄광에서는 매일 1만 여t의 석탄이 생산됐고, 당시 수많은 우리나라 광부들이 이곳의 탄광에서 일했다. 세월이 흘러 탄광이 폐쇄되면서 이 지역 일대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했고, 박물관 등 여러 방식으로 과거 번영했던 독일의 탄광산업을 후대에 알리고 있다. 또한 이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 되어 있다. 에센에서 주목해야하는 또 한 곳이 있다면 그곳은 의문의 여지없이 폴크방 미술관일 것이다. 큰 기대 없이 방문 했다가 미술관을 나설 때는 다시 한 번 관람을 하고 싶어서 에센에 하루 더 머물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폴크방 미술관

‘인류의 목초지’라는 뜻의 ‘폴크방’이란 단어는 고대 노르웨이의 서사시에서 처음 등장했다.

1902년 개인 수집가였던 칼 에른스트(Karl Ernst Osthaus)는 하겐(Hagen)이라는 독일의 작은 산업 도시에 폴크방 미술관을 설립했다. 그는 현대 미술에 크게 매료 되어 있었고 작품 수집을 통해 미술발전에 큰 보탬이 되고 싶어 있다. 화가들의 스튜디오에 직접 방문하여 그림을 구입한다는 철칙이 있었던 그는 르누아르, 로댕, 세잔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 화가 외에도 고갱, 반 고흐, 마티스 등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컬렉션을 확장해 나갔다. 에른스트 사후, 에센 시립 미술관과 합병이 추진되면서 도시의 중심에서 에센 폴크방 미술관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미술관의 소장품은 19세기와 20세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다양한 예술사조로 구성되어 있어서 현재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현대 미술관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폴크방 미술관을 포함해 독일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나치가 통치하던 시절을 무사히 지나치지 못했다. 1930년대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이들은 모더니즘 예술을 전부 ‘퇴폐예술’로 정의하고 대대적인 검열에 들어갔다.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의 음악을 금지 한 것은 물론, 미술 분야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반국가적 요소가 들어 간 것 같다고 여겨지면 가차 없이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특히 그 중심이었던 추상주의, 큐비즘, 인상주의, 표현주의 예술을 공개적으로 부정하고 탄압했다.

이 때문에 폴크방 미술관은 1200여 점의 작품을 압수당했고, 전쟁 중 폭격으로 미술관 건물 일부도 파괴됐다. 다행스럽게도 전쟁이 끝난 후 미술관은 유실되고 피해를 입은 작품을 바탕으로 작품수집에 더욱 열의를 쏟아 더 크고 훌륭한 컬렉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나치가 실시한 박물관의 검열로 인해 독일 내에서만 1만 7000여점의 작품이 압수 되었는데, 이들은 작품들로 ‘퇴폐예술전시회’를 개최했다. 역설적이게도 전시는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정치 후원금을 마련이 주된 목적이었던 나치는 미국시장을 중심으로 압수한 작품을 판매해 이득을 취했고 나머지 팔리지 못한 5000여점의 작품들은 불태워버렸다. 히틀러가 한때는 화가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은 예술계를 비상식적인 방법의 탄압한 그의 행동에 수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또한 정치와 사상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예술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폴크방 미술관은 2006년 한 기부자의 도움으로 미술관 신축 건립 기금을 마련했다. 건축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영국 출신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설계를 바탕으로 2010년 새롭게 문을 열었다. 미술관은 총 6개의 동과 4개의 안뜰, 정원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채광을 위해 통유리를 사용했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쉽게 전시실의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는 미술관은 도서관, 독서실, 강의실 같은 부대시설로 시민들의 접근을 더욱 용이 하게하며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에센시의 중심에서 푸른 목초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폴크방 미술관의 상설 전시관은 폴크방 재단의 지원으로 모든 이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반 고흐 '부두에 묶인 모래실은 배'
◇전시실에서

때로는 푸른 잔디밭 위를 걷다가 발견한 되는 작은 들꽃이 화려한 장미보다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폴크방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게서 꼭 이런 들꽃을 발견 했을 때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미술관의 컬렉션은 주로 19, 20세기 독일과 프랑스 회화와 조각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미술관은 전시실의 층간 이동이 없기 때문에 한 작품씩 따라가며 산책하듯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햇살이 비추는 날은 유리창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따스함이 좋고, 비가 온다면 작품 한번, 창밖 한번 둘러보는 운치 있는 감상이 될 것이다.

전시실 한 켠에서는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그림 몇 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흐와 늘 함께 떠올랐던 색상이 ‘해바라기’의 노란색이었다면 이제는 고흐의 푸른색에 빠져 볼 차례다. 고흐가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지역의 아를에서 머물 때 그렸던 그림 ‘부두에 묶인 모래 실은 배(Quay with Men Unloading Sand Barges)’은 오묘한 빛깔의 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생 테오와 편지로 소식을 전하면서 작품에 대한 설명과 영감을 받았던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던 덕분에 오늘날 관람객들은 작품설명을 화가에게 직접 듣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물은 파랗다’는 고정관념을 깨주는 것 같이 고흐는 시시각각 변하는 물의 색깔을 포착해 푸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녹여냈다.

 
르누아르 '리세와 파라솔'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초기 걸작으로 여겨지는 작품도 만나 볼 수 있다. 캔버스 속의 여인은 르누아르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리세(Lise Trehot)로 르누아르는 모델의 드레스를 표현하는데 매우 집중 했던 것 같다. 정숙함이 느껴지는 드레스가 매우 인상적이며 햇볕을 가리는 파라솔의 레이스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품격을 더해준다.

폴 고갱(Paul Gauguin)의 작품 중 가장 신비스런 분위기와 색채를 뽐내는 것 같은 그림도 만나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폴크방 미술관에서는 이 그림이 미술관의 하이라이트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고갱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타히티 근처의 섬에서 홀로 지내며 그렸다. 말을 타고 핑크빛 초원을 지나 바다를 향하고 있는 장면은 꼭 이상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듯 한 느낌을 준다.

폴 고갱 ‘Riders on the beach’
파울 클레 '보름달이 뜰 때의 불'
파울 클레(Paul Klee,1879-1940)가 1933년에 그린 ‘보름달이 뜰 때의 불(Fire at Full moon)’은 이미 많은 관람객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조금 기다려야 했다. 클레의 작품 중 가장 체계적으로 그려졌다고 평가되는 이 그림은 모자이크 패턴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에도 관심이 있었던 그의 그림이 이토록 구성적인 데에는 분명 그 음악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마치 색채와 모양 배열이 음표를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독일 출신이었던 클레는 그의 급진적인 정치적 성향 때문에 나치당이 집권하자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자신의 작품 100여점을 압수당한 바 있다.

 
에른스트 키르히너 '커피 테이블'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독일 출신 화가 에른스트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 -1938) 의 작품 도 빼놓을 수 없다. 화가이자 판화가로 활동한 키르히너는 1차 세계 대전에 참전 후 남은 여생을 스위스 다보스에서 보내게 되는데, ‘커피 테이블(Coffee table)’은 스위스로 이주한 후 그린 작품이다. 그림 가운데에서 관람객을 등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화가 자신이다. 키르히너는 참전의 후유증을 이겨내며 다보스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지만 자신의 예술이 나치로부터 퇴폐 예술이라고 규정되어 압박당하자 생을 스스로 마감하고 만다. 길가를 지나가다 창가를 통해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들, 미술관 카페에서 책을 보며 한가로운 오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작품 앞에 모여앉아 큐레이터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폴크방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주소; Museumsplatz 1, 45128 Essen, 독일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입장료: 상설전시 무료

홈페이지: https://www.museum-folkwang.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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