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쉬운 노동은 없다
[여성칼럼]쉬운 노동은 없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10.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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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진보당 진주시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10월 20일 민주노총에서 “불평등 타파! 비정규직 철폐”를 걸고 총파업을 실시했다. 이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참하며 핑크빛 물결(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조끼와 모자가 핑크색임)을 드러냈다. 급식노동자들의 파업참여로 몇몇 학교에서는 학교급식을 실시할 수 없어 도시락을 싸가거나, 빵과 우유를 배식했다. 이 날 엄마들은 오랜만에 도시락을 싸며 “예전에 우리 엄마들은 어떻게 하루에 몇 개씩 도시락을 쌌을까?”하며 자신의 엄마의 노동을 생각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 지칭한 ‘그림자 노동’에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가사, 돌봄 노동이 포함된다.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그에 맞게 음식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차리고, 먹고 난 음식을 치우는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들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하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나는 그렇다. 식단을 기획하고 실행해가는 일이 너무 어렵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고 싶다. 어떤 이는 기꺼이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 행복해 하지만 어떤 이는 그렇지 않다.

오랜 기간 가정에서 가사노동은 주로 여성이 담당해왔다. 부부가 맞벌이든 외벌이든 상관없이 여성의 역할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당연히 여성이면 잘 할 수 있고,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족, 엄마, 아내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며 당연히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은 공적인 영역에 그대로 적용되어 가사노동 현장의 임금은 턱없이 낮다. 몇 년 전 한 국회의원이 “밥하는 아줌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정규직으로 왜 하냐”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학교급식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 고용에, 낮은 임금이라도 고용되었으면 다행이라는 식이다. 몇 백 명이 먹을 점심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은 수많은 재료를 칼로 자르며, 저어가며, 뜨거운 불 앞에서 만들어 낸다. 그녀들의 손목 부상, 화상은 일상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일의 숙련도와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식당노동자 또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팬더믹 상황에 “돌밥돌밥”이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밥상 차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에 누구나 공감한다. 개인으로 돌아와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는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라 동감하면서도 노동 가치로 저울질 할 때는 쉬운 노동으로 취급하는 이러한 이중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식단을 기획하는데도 재료와 음식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조리법을 익히고 숙련되어야 한다. 다른 노동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 하는 모든 노동은 인간의 정신과 노력이 함께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노동을, 그리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 그자체로 존중하는 것이 상식인 것처럼 노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OECD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부동의 1위인 나라, 비정규직의 대부분이 여성인 나라, 디지털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차별은 산적해 있고, 여성들의 노동은 때로는 값없는 노동으로,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노동으로 여겨진다. 단언컨대, 쉬운 노동은 없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의 하루 파업이 나에게 오는 불편함을 따지기보다, 같은 사람, 같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파업까지 하면서 외치고 있는 소리에 귀 기울여 부당함과 불평등을 타파하는 행동에 공감하는 공통의 감각을 함께 키워가자.

전옥희(진보당 진주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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