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학 그 뒤안길(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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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10.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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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시 동인지 ‘시향’ 15집 후끈한 바람 일다(2)
제호를 ‘시집 보내지 않겠습니다’라 붙여 보내온 이번 동인지를 읽어 나가다가 김시탁 차례에 제목을 본다. ‘개가 사라졌다’ 외 3편이다. 세 번째 시가 ‘시집 보내지 않겠습니다’이다. 시인이면 다 이런 심정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요줌 사람들 책 보내줘도 읽지 않고 버린답니다/ 아무 책이나 받는 것도 귀찮다는 것이지요/겉만 보고 뜯지도 않고 봉투째 쌓아두기도 한다네요/ 그렇게 쌓인 책은 야식 먹을 때 라면 받침대나/ 바퀴벌레 잡는 도구로 사용하거나 장롱 모서리에 끼여/ 평생을 썩기도 한답니다/ 작가는 가슴으로 키운 자식 하나 차비 들여 보냈으니/ 잘 살아주길 바랄 텐데 무슨 비참한 운명이란 말입니까/ 냄비 받침대 밑에서 얼마나 뜨거울까요/ 바퀴벌레를 놓친 바닥에 맞는 정수리와 뺨은 또 얼마나 아프고/ 안방 장롱 모서리에 끼여 질식사 한들 누가 알기나 할까요/요즘은 둘째만 낳아도 큰 돈 준다는데 네 번째 나온 시집/ 겉봉투를 풀칠하다 말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를 아무데나 시집 보내면 골병이 들겠구나/ 차마 그 소릴 듣고 어떻게 내 새낄 사지로 보냅니까/ 혼자 살아라, 먼지 마시며 구석에 있더라도 애비 곁이니/그래도 여기선 애비가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후략)”

보지도 않는 시집을 부친 시인의 심정을 섬세하게도 그리고 있다. 필자는 요즘 전국의 시인들에게 시집을 부쳤는데 돌아오는 책이 삼분의 일이나 되어 기분이 매우 딱해졌던 때가 있었다. 돌아오는 것이 삼분의 일이고 가서 홀대를 받는 경우를 생각하니 남은 삼분의 이도 안녕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할 것이다. 김시탁 시인의 염려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때 필자는 시인은 가난하여 자주 이사를 가 책을 받을 입장이 아닌 것 같아 시인을 유목민의 후예라 하고 시를 쓴 일이 있다. 요즘 필자의 연구실에도 시집과 저술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 그건 그렇고 필자가 어느날 시내 헌책방에 들러서 필자의 시집이 도매금으로 헌책방에 나와 있지 않을까 암행을 했다. 쭉 들러보는데 시집 코너도 아니고 그 아래 땅바닥에 오래 된 필자의 시집 두 권이 버림받고 있었다. 얼른 그 두 권을 들고는 손으로 먼지를 탈 탈 털었다. 모서리 먼지도 손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 주인 보고 “이 책 두 권 얼마요? 편하게 값을 매겨 불러 보세요. 부르는 대로 드리겠습니다”했더니 “각권 2000원 합이 4000원입니다” 하는 것 아닌가? 아, 내 시집이 이렇게 헐값에 나가다니! 헌책방 판매 윤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나왔다. 그래 필자는 시를 썼는데 “시집아 이제 너희는 책방 먼지 들러쓰고 온갖사람 발에 밟히는 자리 난들에 신문지 한 장도 덮지 못하고 노숙하지 않아도 되니라. 이제부터는 나와 동거동락하기로 하자. 내 번지 주소에 나의 식구로 살게 되니라”

다음 시는 문희숙의 시 ‘노인’을 읽자. “오백년쯤 살고 난 졸정원*의 녹나무는/ 늘 배고픈 바람이나 새를 안고 밤낮 졸더니/ 마침내 배꼽 밑둥에 쩌억/ 둥근 문을 열었다// 기억이 문을 나서고/ 두려움도 따라 나갔다/ 사는 건 돌부리에 부딪히며 내려가는 일/ 가벼운 어둠이 된 그는 한 칸 더 내려갔다”(졸정원: 중국 장수성 소주에 위치한 명대 정원. 중국 4대 정원 중 하나)

중국 장수성 졸정원의 녹나무를 보고 와서 시를 쓴 것일까? 아니면 사진을 보고 녹나무의 신비감을 그린 것일까? 시는 오백년 수령의 녹나무의 뻥 뚫란 구멍을 가지고 노인 행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기억의 문을 나서고 두려움으로 따라 나선 것도 노인이다. 그 다음 줄 “사는 건 돌부리에 부딪히며 내려가는 길”이 노인의 길이고 노인 되는 길일 것이다. 노인의 노숙이랄까, 달인이랄까. 노숙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닌 것을 이 시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시의 전략이다. 이국 정서의 현장감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문희숙의 시론적 시다. “모래가/ 꿈꾸는 숲// 바람 속/ 새의 음향// 돌을 깨어/ 거울을 빚고// 사원의 주랑을 걷는,// 가려도 /새어나는 빛”(‘시’ 전문)

짧은 시다. 이런 시를 쓰기는 쉬운 듯하지만 수련이 되지 않을 때는 쓰기가 오히려 힘들다. 모래하고 숲은 먼 거리이다. 바람과 새의 음향도 방해하는 거리이다.돌과 거울의 거리도 멀다. 그러나 먼 자리의 두 사물을 대조하거나 견주는 것에서 시는 만들어진다. 시는 같은 거리라든가 늘 곁에 있는 것이라든가를 갖다 대고는 무슨 반향을 끌어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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