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피지공화국에서 통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속이 편치 않았다. 기류 탓 일수 있지만 고엽제 후유증을 완화하는 약을 먹기 위해 탑승 전 급하게 먹은 아보카도와 바나나, 토스트가 오히려 속을 안 좋게 했다.
사실 출발지인 피지공항에서 사람들과 사소한 일로 실랑이를 벌인 터라 리듬이 다운 된 것도 한몫했으리라.
피지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과는 달리 통가사람들은 밝은 모습이었다. 비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치마를 입고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으나 얼굴 표정에선 품격이 느껴졌다. 나에게 불쾌하다는 눈빛보다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의 행동은 여행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와의 첫 인상을 되새겨 볼 틈도 없이 비행기는 빠르게 날아 통가공항에 도착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비행기가 요동치며 착륙했다. 흔들리는 비행기의 모습이 피지에서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훌훌 털어버리라는 뜻이리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통가는 뉴질랜드 북동쪽 약 1900㎞ 지점 남태평양에 있는 170여개 섬으로 이뤄진 왕국이다. 주로 산호섬이며 이 중 130여개가 무인도이다. 퉁가어와 영어를 쓰며 인구는 10만 6759명 세계 192위(2021 통계청)이고 수도는 누쿠알로파이다. 면적은 7만 5000㏊ 세계 188위이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대부분 Wesleyan Church계이다.
통가 왕국은 10세기 투이통가 1세가 된 아호에이투에 의해 950년 수립됐다. 1616년 네덜란드인이 처음 발견해 서구에 알렸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입구까지 걷는데 같은 탑승했던 비행기 승객들이 공항입구에 직원들과 만나면서 한쪽 볼을 대고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통가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대부분 큰 체구를 갖고 있었다. 그에 비해 얼굴표정은 마치 서너 살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하고 맑아보였다.
그러는 사이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나와 그를 맞이하면서 인사를 했다. 심지어 VIP라운지의 직원이 나와서 그에게 인사하며 의전을 했다. 조금 전 비행기 이코노미석이 앉아 있던 그 사람이었다.
나의 동선과 같아 그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형국이 됐다. 그는 입국심사대와 별개로 구분돼 있는 VIP라운지로 들어갔다.
방향이 달라진 나는 서둘러 입국심사대로 들어갔다. 흰머리와 검은머리가 뒤섞여 민머리를 한 나에게 심사대 줄에 서있는 퉁가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퉁가에 처음왔다”는 나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무척 호의적으로 대했다. 심사대 사람들은 긴장한 나에게 배려하듯이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그 덕분에 심사는 신속하게 끝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자꾸만 뭘 “말로 하라”고 하는 듯했다. “말로 말로!” 마치 한국말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를 한국인 걸 알아보고 사람들이 내게 ‘말로 뭘 하라는 것인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인사말이었다. 억양과 톤까지 한국말과 비슷해 생긴 해프닝이었다.
환전소에서 한국 돈을 바꾸려고 하자 안 된다고 했다. 아뿔싸, 지금 내게 남은 50불의 피지돈만 겨우 통가돈 50불로 바꿀 수 있었다. 단돈 50달러, 이곳의 물가도 모르지만 일단 돈이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했다. 잠을 자는 건 경찰서 신세를 지면 될 일이었다.
그때 체구가 큰 VIP장정이 다가왔다. 재미있는 건 그는 나오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줬다.
그것도 멀리서 봐도 10불, 20불 정도를 주는 것 같았다. 꽤 큰돈을 그냥 뿌리고 다니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해오기는 했다. 공항 검색대에 있는 직원에게도 팁을 주었다. 나도 인사하면 혹시 돈을 주려나 싶어 바라보았다.
그리고 앞에 기다렸다가 조금 전 다른 사람들이 하던 대로 “말로!”라고 인사했다. 그도 “말로! 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런데 누구신지?”라며 의아해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민머리의 외국인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온 ‘레미’이며 왜 여행을 하는지 퉁가에는 왜 왔는지 등 간단한 여정을 소개했다. 그도 나의 말에 호응했다.
그러면서 뭔가 자꾸 얘기를 했다. 내 생각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그래서 그 사람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는지 대화 중 미소를 지어주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사람이 교회의 목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곳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로서 지역에선 꽤나 명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응해주며 나를 집에까지 초대해주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풍채 때문에 무슨 회사의 리더나 조직사회의 보스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를 데리러 온 체구 큰 사람들이 4명이었다. 그들 또한 교회에서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로서 목사님을 깍듯이 모셨다.
목사님의 집은 깔끔하고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맞은편에 별채형식으로 큰 교회를 두고 있음에도 자신의 건물 1층 강당과 또 다른 건물에도 예배를 올릴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해 두었다고 했다.
통가왕국에서도 합창단에 관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실상 교회에는 합창단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해졌으나 다음에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차와 다과를 나누며 대화하던 중·고등학생은 될법한 소녀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목사님에게 귓속말로 소근 거렸다.
“레미 방이 준비가 다 되었답니다, 따라 오세요”
‘방을 정리했으니 이제 손님을 안내해도 된다’는 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은 소녀들이나 여성이 사용했던 것처럼 보였다. 책상은 없고 다양한 가구가 오밀조밀 배치돼 있었으며 그 옆에 큰 침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마치 유럽의 수도원 수도사의 방과 같다는 단출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딸들 중 한 명의 방일 것이다. 목사님을 비롯, 그들이 나에게 베푸는 환대가 너무 고마웠다. 아무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큰 사랑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출발지인 피지공항에서 사람들과 사소한 일로 실랑이를 벌인 터라 리듬이 다운 된 것도 한몫했으리라.
피지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과는 달리 통가사람들은 밝은 모습이었다. 비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치마를 입고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으나 얼굴 표정에선 품격이 느껴졌다. 나에게 불쾌하다는 눈빛보다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의 행동은 여행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와의 첫 인상을 되새겨 볼 틈도 없이 비행기는 빠르게 날아 통가공항에 도착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비행기가 요동치며 착륙했다. 흔들리는 비행기의 모습이 피지에서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훌훌 털어버리라는 뜻이리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통가는 뉴질랜드 북동쪽 약 1900㎞ 지점 남태평양에 있는 170여개 섬으로 이뤄진 왕국이다. 주로 산호섬이며 이 중 130여개가 무인도이다. 퉁가어와 영어를 쓰며 인구는 10만 6759명 세계 192위(2021 통계청)이고 수도는 누쿠알로파이다. 면적은 7만 5000㏊ 세계 188위이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대부분 Wesleyan Church계이다.
통가 왕국은 10세기 투이통가 1세가 된 아호에이투에 의해 950년 수립됐다. 1616년 네덜란드인이 처음 발견해 서구에 알렸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입구까지 걷는데 같은 탑승했던 비행기 승객들이 공항입구에 직원들과 만나면서 한쪽 볼을 대고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통가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대부분 큰 체구를 갖고 있었다. 그에 비해 얼굴표정은 마치 서너 살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하고 맑아보였다.
그러는 사이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나와 그를 맞이하면서 인사를 했다. 심지어 VIP라운지의 직원이 나와서 그에게 인사하며 의전을 했다. 조금 전 비행기 이코노미석이 앉아 있던 그 사람이었다.
나의 동선과 같아 그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형국이 됐다. 그는 입국심사대와 별개로 구분돼 있는 VIP라운지로 들어갔다.
방향이 달라진 나는 서둘러 입국심사대로 들어갔다. 흰머리와 검은머리가 뒤섞여 민머리를 한 나에게 심사대 줄에 서있는 퉁가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퉁가에 처음왔다”는 나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무척 호의적으로 대했다. 심사대 사람들은 긴장한 나에게 배려하듯이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그 덕분에 심사는 신속하게 끝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자꾸만 뭘 “말로 하라”고 하는 듯했다. “말로 말로!” 마치 한국말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를 한국인 걸 알아보고 사람들이 내게 ‘말로 뭘 하라는 것인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인사말이었다. 억양과 톤까지 한국말과 비슷해 생긴 해프닝이었다.
환전소에서 한국 돈을 바꾸려고 하자 안 된다고 했다. 아뿔싸, 지금 내게 남은 50불의 피지돈만 겨우 통가돈 50불로 바꿀 수 있었다. 단돈 50달러, 이곳의 물가도 모르지만 일단 돈이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했다. 잠을 자는 건 경찰서 신세를 지면 될 일이었다.
그때 체구가 큰 VIP장정이 다가왔다. 재미있는 건 그는 나오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줬다.
그리고 앞에 기다렸다가 조금 전 다른 사람들이 하던 대로 “말로!”라고 인사했다. 그도 “말로! 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런데 누구신지?”라며 의아해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민머리의 외국인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온 ‘레미’이며 왜 여행을 하는지 퉁가에는 왜 왔는지 등 간단한 여정을 소개했다. 그도 나의 말에 호응했다.
그러면서 뭔가 자꾸 얘기를 했다. 내 생각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그래서 그 사람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는지 대화 중 미소를 지어주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사람이 교회의 목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곳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로서 지역에선 꽤나 명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응해주며 나를 집에까지 초대해주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풍채 때문에 무슨 회사의 리더나 조직사회의 보스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를 데리러 온 체구 큰 사람들이 4명이었다. 그들 또한 교회에서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로서 목사님을 깍듯이 모셨다.
목사님의 집은 깔끔하고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맞은편에 별채형식으로 큰 교회를 두고 있음에도 자신의 건물 1층 강당과 또 다른 건물에도 예배를 올릴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해 두었다고 했다.
통가왕국에서도 합창단에 관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실상 교회에는 합창단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해졌으나 다음에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차와 다과를 나누며 대화하던 중·고등학생은 될법한 소녀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목사님에게 귓속말로 소근 거렸다.
“레미 방이 준비가 다 되었답니다, 따라 오세요”
‘방을 정리했으니 이제 손님을 안내해도 된다’는 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은 소녀들이나 여성이 사용했던 것처럼 보였다. 책상은 없고 다양한 가구가 오밀조밀 배치돼 있었으며 그 옆에 큰 침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마치 유럽의 수도원 수도사의 방과 같다는 단출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딸들 중 한 명의 방일 것이다. 목사님을 비롯, 그들이 나에게 베푸는 환대가 너무 고마웠다. 아무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큰 사랑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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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유지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