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오늘이 좋다
[경일춘추]오늘이 좋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10.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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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희 수필가·진주문협회원
 


생업으로 피아노를 치는 자그마하고 귀엽게 생긴 친구가 있다. 만날 때마다 삶의 음계를 나눠주는 친구다.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그녀로 인해 가끔 들쑥날쑥한 나의 성향이 누그러진다. 여고 졸업 후 20여년이 지나서 친해진 친구다. 어쩌다 만나 오십이면 이제 단풍놀이도 가고 자신만의 삶을 즐기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친구가 “있잖아 나는 평생 감잎사귀 단풍만 보고 살았다. 단감 농사짓는 아버지 땜에”

“고뤠! 나도 계단식 농사짓는 울 아버지 땜에 평생 논에 벼가 파래졌다가 노래졌다가 논두렁에 콩이 파래졌다가 노래졌다가 오그라드는 것만 봤다. 그래도 감잎은 구경할만하지.”

“하긴 감잎이 그게 빤닥빤닥 하고 색이 달라지는 게 참 볼 만 하긴 해. 남들은 외동딸이라고 조합장 딸이라고 귀하게 큰 줄 알지. 아나 떡이다야. 나는 일꾼들 새참 해다 줘야지. 감 상자 들어 날라야지. 날마다 쌔가 빠졌다. 이래봬도 통뼈다 내가.”

“내 손바닥에 옹이진 거 보면 사람들이 다 놀랜다. 천생 내가 도시 여자로 보이나 봐. 지금도 낫질하러 다니는데.”

남들이 들으면 웃기는 대화지만 동일한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교감하는 대화에 사람은 단박에 친해져 버린다. 부모는 일하는데 양심이 가책이 되어서 제대로 나들이를 해본 적이 없다 라는 교집합에서 의기가 통하여 서로 신뢰를 가진 벗이 되었다.

노후라도 걱정할라치면 늘 내려놓으라 한다. 나는 아무리 살펴도 맨몸일 뿐. 들고 이고 진 것도 없는 데 무얼 내려놓으라는지. 화장기 없는 얼굴. 늘 수수한 옷차림. 만날 때마다 웃는 얼굴로 자그마한 봉지에 나눠먹자 하면서 내어주는 밤, 건빵, 포도즙, 커피. 내가 내려 놓아야하는 게 내 것만 챙기는 부족함이요. 예의라는 이름으로 챙기는 헛 멋이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바라며 나누는 마음이었구나.

올 가을도 벌써 설익어 떨어지는 것 같다. 서두르는 기색이 확연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대선 전초전으로 벌겋게 물들어 가고 있다.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들이 근로 소득자를 바보로 아는 세상이다. 근로 소득으로만 사는 두 바보가 주식으로 물드는 단풍은 아랑곳없고 보온병에 믹스 커피를 담아 공원을 산책하며 웃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자라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우리가 된 것이 다행이다. 부자가 아니어도 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부자들이 억억 할 때 우리는 조조 한다. 오늘 날씨 참 조오타. 지금이 제일 조오타. 오늘이 제일 젊은 날 좋은 날이다.
민경희 수필가·진주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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