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손님 오시는 날
[교단에서]손님 오시는 날
  • 경남일보
  • 승인 2021.11.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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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시인·교사)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우리 교실로 손님이 오신단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공개수업’이라는 용어는 거창한 말이다. ‘손님 오시는 날’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함께 손님 맞을 준비를 하게 된다. 가정에서의 손님맞이처럼 책상서랍 속에도 들여다보고 필요 없는 종이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단정하게 준비한다. 손님이 사물함 속을 들여다볼 리 없겠지만 학생들은 사물함 속도 가지런히 정리하고 책꽂이도 키 높이대로 꽂아 놓는다. 이때 ‘손님’이 교장, 교감 선생님과 이웃 교실의 선생님들이라는 것도 알려 주어야 궁금증을 놓고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 궁금증은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풀릴 때까지 다음 단계의 생각이나 일을 하는 데 지장을 주기도 한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러 온다고 설명하면 대부분 선생님과 힘을 합쳐 평소보다 더 잘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학생들은 예전과 달리 ‘공개수업’ 시간에 긴장하지 않는 듯하다. 손님이 와 계셔도 스스럼없고 자유롭다. 단지 수업 외의 필요 없는 말을 삼가고 집중하며 자기의 생각이나 지식을 발표라는 이름처럼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도 척척 한다.

선생님은 단 하루 한 시간의 축제를 준비한다. 갖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손님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준비하는 주인처럼 수업에 데코레이션으로 수놓을 준비를 한다. 아마 평소에 하던 한 시간의 수업과는 격이 다른 수업이 진행될 것이다. 수업 지도안을 골똘히 짤 것이고 초등학생이다 보니 평소와 다른 많은 자료를 준비할 것이다. 오시는 손님에게도 풍성하겠지만 학생들에게도 풍성한 수업이 된다.

이와 같아서 ‘공개수업’은 늘 풍성한 잔치 같다. 오시는 손님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풍성함이 있다. 나의 수업을 보시고 무엇을 판단하기보다는 행복한 한 시간을 함께 누리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수업의 목표나 성취기준과도 다르고,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엉뚱한 대답을 하는 학생이 있다. 그의 진지한 눈동자를 마주칠 때의 황당함이 환한 단풍빛으로 다가온다면 그날 나의 수업은 참 잘한 것이다. 그래서 교실은 늘 새롭고 수업도 늘 새로운 것이 되고 교직은 지루하지 않다. 모두 다른 학생과 만들어 가는 한 해이기 때문이다.

허미선 시인·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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