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3]사천 매향비 순례길과 다솔사 힐링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3]사천 매향비 순례길과 다솔사 힐링길
  • 경남일보
  • 승인 2021.11.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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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빛으로 물든 취향저격 힐링길
 
◇이타적인 사랑의 구현인 매향제

매향(埋香)이란 내세의 미륵 세상에서 태어나길 염원하면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갯벌에 향나무를 묻는 의식을 말한다. 묻어놓은 향목은 오랜 세월 지나도 썩지 않고 민물과 바닷물의 조화 속에 잘 발효되어 미묘한 향기를 내는 신비스러운 침향이 된다. 매향은 자기나 아들딸,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도 모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 향목을 묻는다고 미당 서정주 시인은 시 ‘침향’에서 말하고 있다. 천년 뒤 다가올 용화세계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향목을 묻은 매향의식은 현실 극복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만 먼 미래의 남을 위한 기복에 더 큰 의미를 둔 지극히 이타적인 사랑이 담긴 의례임을 알 수 있다.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 있는 매향비에서 매향의례를 재현하는 매향제 체험, 솥골마을에 있는 이형기 시인의 생가 탐방, 다솔사 힐링길과 산사음악회 체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멀구슬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특별한 체험을 하기 위한 힐링여행을 떠났다.

진주에서 매향비가 있는 사천 흥사리까지는 승용차로 30분이면 충분했다. 10시부터 시작하는 매향제에 참가하기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보물 제 614호로 지정된 흥사리 매향비는 고려 우왕 13년에 세운 비로, 600여 년 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흥사리에서 사천을 비롯한 서부경남지역 스님들과 민중 4,100명이 모여서 갯벌에다 향을 묻은 뒤 제를 지내면서 국태민안과 미륵보살의 재림을 염원하는 미륵신앙을 담은 내용 총 204자의 축원문이 비에 새겨져 있다.

다솔사 주지이신 원걸스님의 분향을 시작으로 거행된 제1회 흥사리 매향제는 부처님과 천지신명께 발원, 헌향, 헌화, 헌다, 매향무를 올린 뒤 마지막에 매향의식을 가졌다. 지금은 매립되어 갯벌이 사라진 흥사천에 향목을 묻고 참가자 모두 오색실을 나눠 가진 뒤 흥사천 둑방을 따라 매향비 순례길을 걸으면서 마음 속 염원을 빌었다.

 
 
◇낙화의 시인 이형기 생가마을

매향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승용차를 이용해 ‘낙화’란 시로 유명한 이형기 시인의 생가마을인 곤양면 서정리 솥골마을로 향했다. 꽃이 활짝 핀 봄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착한 솥골 둑방길엔 코스모스들이 두 줄로 서서 우리 일행을 마중 나와 있었다. 봄꽃보다 더 화사하게 핀 코스모스길을 걸어서 도착한 서정리는 마을 뒷산이 솥을 걸어둔 형세라 솥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 앞 제법 넓게 펼쳐진 들녘 끝에 곤명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터였다. 산기슭을 따라 형성된 솥골마을은 자그마하지만 서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담벼락마다 이형기 시인의 명시들이 화사한 가을꽃으로 피어나 있었다.

사천시 김규헌 시의원께서 이형기 시인의 생가를 안내 주셨다. 지금은 다른 분이 사는데 이곳에서 태어난 이형기 시인은 만2년 동안 살다가 진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형기 시인이 태어난 고향을 진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탄생한 곳은 곤양면 서정리 솥골마을이다. 생가마을 탐방을 마치고 멀구슬문학회 회원들끼리 모여 벽화에 새겨 놓은 ‘노을길’과 ‘코스모스’를 낭송한 뒤 곤양천 둑방길 옆에 있는 체육공원으로 향했다.

‘자꾸만 트이고 싶은 마음에/하야니 꽃 피는 코스모스였다//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물결 같은 그리움이었다//송두리째 희망도 절망도/불타지 못하는 육신//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귀뚜리 우는 섬돌 가에/몸부림쳐 새겨진 어둠이었다//그러기에 더욱/흐느끼지 않는 설움 호올로 달래며/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까마득한 하늘가에/나의 가슴이 파랗게 부서지는 날/코스모스는 지리라’

‘코스모스’를 읊조리면서 체육공원에 도착하자 주최 측에서 김밥과 피조개, 떡과 과일 등을 공원 쉼터에 풍성하게 마련해 놓았다. 점심 식사 뒤, 필자 일행은 곤명천 둑방길을 걸었다. 반은 꽃으로 피어 있고, 반은 씨앗을 머금은 코스모스들이 목을 길게 뺀 채 푸르른 가을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다. 곤양천 위 비봉교에서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물멍을 때리고 나니 몸과 마음이 가을빛으로 물든 느낌이 들었다.

 
 
◇애기단풍에 물든 다솔사 힐링길과 산사음악회

다솔사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다솔사 주차장에 도착한 뒤 경내를 둘러보았다. 2년 전 새로 주지로 부임하신 원걸스님께서 절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 놓으셨다.

절 입구의 솔숲길을 새로 정비해 놓았고, 절 뒤쪽에 있는 녹차밭에는 산책로도 조성해 놓았다. 녹차밭산책로를 걸으면서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좋았지만 내려다보는 다솔사의 가을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절 동쪽 편백나무 숲에는 한용운길을 만들어 놓았다. 안심료에 머물면서 항일저항단체인 만당을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하면서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하신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한용운길 길섶에는 때마침 털머위들이 노란 꽃을 펼쳐놓고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옛날에는 사찰이 수행중심의 도량이었다면 지금은 수행과 더불어 힐링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원걸스님의 뜻이 사찰 곳곳에 배어나 있는 듯했다. 황금공작편백, 비자나무 고목, 연리목, 장군석, 어금혈봉표 등 곳곳에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의 요건을 갖춘 다솔사는 힐링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다솔사 솔숲길과 녹차밭산책로, 한용운길 등 경내를 한 바퀴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오후 2시부터는 시와 함께 하는 산사음악회가 열렸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들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돋우어 놓은 다솔사에서 시낭송, 성악, 해금연주, 민요, 무용, 통기타 노래 등 깊어가는 가을의 격조에 맞게 펼쳐진 음악회가 참석한 사람들의 가슴을 애기단풍 빛으로 물들게 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을을 선물 받은 하루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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