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몽골 이태준 기념공원
[경일칼럼]몽골 이태준 기념공원
  • 경남일보
  • 승인 2021.11.0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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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칭기즈칸국제공항에 안착했다. 아기를 깨워 들쳐 업는 여인의 짐을 대신 내려 끌고 가면서 아기 얼굴에 가까이하여 “까꿍” 하니 환하게 웃는다. 젊은 엄마에게 “칭기즈칸의 후예 혹은 단군의 후손?” “칭기즈칸!”

몽골 엉크츠산 트레킹이다. 들에 능선에 꽃이 지천으로 깔렸다. 야생화에게 왜 노란색으로 아름답게 단장하느냐 묻는다면,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하고 개화시간이 짧아 촌음을 아끼며 곤충의 눈에 노란색이 강한 자극을 준다 하겠지! 낙화 직전의 색이 눈부시다 이를 처연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울란바토르에서 54㎞ 떨어진 고속도로 근처에 네발을 기단에 붙인 칭기즈칸 기마상이 있다. 주인공이 전사했을 경우 말의 앞 두 다리를 들게 하여 비장함을 연출하고, 용감하게 출전 중이거나 후유증으로 사망한 경우는 한쪽 다리를 들게 하고 노환으로 사망한 경우 네발을 고정시킨다. 칭기즈칸은 황제가 된 후에도 원정을 지속하여 67세에 병사한다. 칸은 파발마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였다. 광활한 평원에 부는 바람이 말의 귀를 간지럽게 하여 쉬지 못하고 달려 3일 이내 공문이 모든 제국에 전달되었다. 빠른 것이 능사가 아니라 3일만 참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생겼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언덕에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탑이 있다. 러시아와 연합하여 일본에 승리하는 전투 장면을 안내자는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한국인은 몽골 반점이 있다”고 하자 목소리기 높아지고 세계 최초 우주인은 몽골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언덕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자 국내에 널리 알려야 할 위인의 행적을 볼 수 있다. 자작나무 숲속 끝부분에 한국에서 운반한 대리석에 ‘이태준 기념공원’이라 깊게 새겼다. 대암정(大岩亭)과 기념관을 세우고 주변을 노란 구슬 같은 꽃봉오리를 달고 있는 꽃을 심었다. 엉크츠산에서 감탄했던 그 야생화이다.

대암 이태준 선생은 항일 애국투사로 2000㎞ 떨어진 울란바토르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는 1883년 11월 21일 함안 군북면 명관리 1144번지에서 태어나 1911년 세브란스병원의학교 2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92호)를 받는다.

학적부를 공개하였다. 좌우로 스승 올리비일 에비슨, 도산 안창호 사진을 배치하고 가운데 사립세부란시연합의학교학적부(私立世富蘭?聯合醫學校學籍簿)의 사본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세브란스’를 ‘세부란시’로 하였다.

대암의 생가터는 일제시기에 저수지를 만들어 물에 잠겼고 다녔던 서당 사진도 게시되었다. 사진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걸음을 멈추게 한다.

김필순 주현칙 등과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 1914년 김규식 선생과 군관학교 설립을 목표로 울란바토르로 이동하여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하여 독립운동 연락 거점으로 활용한다.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운반하고 의열단 활동을 하였다. 성병 퇴치에 앞장서 몽골 사람들은 그를 여래불 대하듯 하며 몽골 마지막 왕 복드 칸의 어의가 되었다.

1921년 일본군과 내통하고 있던 러시아 백군에 의해 38세의 나이에 피살당했다. 선생이 뿌린 인술은 몽골 산과 들에 아름다운 꽃으로 되살아나 영원할 것이다.

고풍스런 기와집으로 단장한 톨게이트의 처마 밑에 ‘아라가야 고도 함안’이라는 현판을 지나 가야읍으로 길을 잡는다. 오른손의 칼끝은 진격 방향이고 말의 왼 발굽은 높게 들려있는 충렬공 이방실 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장군은 함안 여항면 내곡리에서 판도사 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 공민왕 8년 홍건적 20만명이 서북면 강토를 유린하여 개성이 함락되자 선봉장이 되어 왕도를 수복하는 등 외적을 물리쳐 이 땅을 지킨 명장이다. 왕은 옥대와 옥 갓끈을 하사한다. 공민왕 10년(1361) 김용이 꾸민 거짓 왕명으로 정새운, 김득배, 안우 등과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용재총화에 ‘도득의 머리를 벗긴 용맹’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젊은이는 동행이 도둑인 줄 알면서 태연하다. 논 가운데 비둘기 한 쌍이 앉아있었다. 도둑이 “공은 쏠 수 있습니까?” 하니 젊은이는 화살 한 개로 두 마리를 맞추었다. 이 젊은이가 이방실 장군이다.

이역만리 몽골에서 대암 선생이 보여준 의술과 애국투사로서 활동은 나라 사랑의 귀감이다. 함안인의 위상을 드높인 이방실 장군 기마상 옆에 몽골 야생화를 배경으로 이태준 선생의 동상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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