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대학병원 응급실의 민낯
[경일시론]대학병원 응급실의 민낯
  • 경남일보
  • 승인 2021.11.0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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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세기적 역병, 코로나19 방역에 인고의 어려움을 안고 묵묵히 의료인의 사명을 다하는 병원종사자들의 희생에 찬사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 사람이 가져야 할 정서적 여유와 원초적 휴식까지 반납하면서 환자치료에 진력한다. ‘K-방역’의 대체적 우수국가 위상을 가진데는 감염을 무릅쓰고 현장을 지킨 공공 의료진의 노고 따름이라 할 것이다.

티없는 옥(玉)은 있어도 완벽한 옥은 없다. 미중부족(美中不足), 애닯은 심정으로 체험을 옮긴다. 10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의식은 있었지만 전날과 완연히 다른 거동을 보인 80대 중반의 노모를 구급차를 통해 경남의 거점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의료급여법에 근거한 3차 급여기관, 국립의 상급종합병원이다. 아들로서 어머니 병력(病歷)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던 바 대로, 전해질 중 포티슘(칼륨)-K 수치 과다에 따른 부작용의 일단이었다. K지수가 높으면 위급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의료진의 응급처치에 이어 CT 촬영을 마치고 ‘중중응급환자실’에 입원한 약 12시간, 그 공간의 어떤 누구도 신분증을 착용하거나 이름표를 패용한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드나드는 사람이 의사인지 아닌지, 주치의가 누군지를 분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우선 환자상태를 누구에게 물어 봐야 하는지가 혼란되었다. 두손을 모은 채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증상을 묻는 게 전부였다. 소상한 답은 불가, 부가적 질문은 거의 불가능했다. ‘환자가 죄인인가’란 자문(自問)이 생길뻔 했다. 무례를 연상하여, 행여 환자에 있을 무성의나 미진한 처치를 방지한다는 환자 보호자 본능이 작용됐을 것이다. 증상이 조금만 호전되면 곧장 퇴원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친절한 구성원만 있었던 것이 아닌 까닭이기도 했다. 환자 침상위 모니터에 나타난 난해한 증상 관련 특정 수치의 의미를 물었지만, ‘모른다’는 답을 듣기도 했다.

입원치료를 권하며 안심할 수준의 병세가 아니라는 의료진의 전갈에도 퇴원을 결심했다. 응급실 수납창구에서 정산을 요청했다. “응급실 이용의 휴일과 야간에 대한 할증비율이 얼마인가?”를 물었다. “모른다”였다. “대강의 검사항목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했다. 정산을 정확히 해 달라는 우회적 희망이었다. 구매에 대강의 물목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는 상식에 따름이다. 답은 “지불하기 전에는 말해 줄 수 없다”였다. 병원이라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는 만고불변의 ‘상행위’, 내지는 비즈니스 이치가 스쳤다.

무시당하고 완불 후에야 억지같은 ‘진료비 세부내역’을 받았다. 100개 이상의 항목으로 나눠 놓았다. 마치 냉면 한그릇 주문에 무채와 계란, 겨자나 식초, 수저사용료 및 식탁관리비 등과 같은 소분이었다. 검토하고 따져 볼 의지를 뺏기에 충분했다. 퇴원 후 확인한 내역에 따르면 ‘검사 안했다’고 답한 두부, 즉 머리 CT 항목도 있었다. 복부CT 촬영에 대한 ‘이상 없었다’란 설명은 있었지만, 안했다던 두부는 물론, 복부에 대한 촬영물 일체의 열람을 통한 설명은 없었다. 전문적 의료처치를 일괄할 수는 없다. 다만, CT촬영과 4차례의 혈액검사, 심전도검사, 염화나트륨 수액 공급만이 요목으로 기억된다.

본인 부담금을 제외한 100만원 남짓의 건강보험 급여로 ‘국가재정’에 마음의 빚을 남겼다. 이 병원은 연간 약 85만명의 환자로부터 2700여 억원 남짓의 매출을 올린다. 홈페이지에 ‘환자는 증상 및 진료비용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과 질문할 권리’를 담은 장대한 ‘환자권리장전’을 탑재해 놓았다. 아울러, ‘병원윤리’라 하여, 환자권리 존중 및 신뢰와 사랑을 언급했고, 더하여 환자중심, 고객만족, 국내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강조한 병원장의 인사말도 있다.

 

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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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2021-11-11 09:34:10
의료진 및 원무과 직원들이 받았을 스트레스가 눈에 그려진다. 보통 진상이라고 하죠. 이런 사람들을... 본인이 하는 일을 이처럼 꼼꼼하고 성실하게 먼저해 두고 남들 하는 일에 손가락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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