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천왕봉을 오르며 남명 사상을 생각하다
[경일시론]천왕봉을 오르며 남명 사상을 생각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11.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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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지난 주말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왔다. 오를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지리산은 한 없이 너른 품으로 민초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임이 있는 듯 끊임없이 찾는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 천왕봉을 500번 넘게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맨발로 천왕봉을 100번 이상 오르겠다고 원을 세운 이도 있다. 건강을 위해, 학문을 위해, 예술을 위해, 생업을 위해 숱한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든다. 따지고 보면 다들 삶을 위해서 지리산을 찾는 것이다. 지리산 주변 뿐 아니라 경향각지에서 찾아든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한의 후예들은 지리산에 달의 궁전을 만들었고, 가락국 마지막 왕조도 지리산을 찾았다. 전란이 나면 민초들은 살기 위해 지리산에 들었다. 선비나 고승대덕은 지리산에 들어 깨끗하고 맑은 영혼으로 학문을 성취하거나 큰 덕을 쌓았다. 지리산은 자연의 산이면서 사람의 산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천왕봉에 반해 거처를 아예 덕산동으로 옮긴 ‘천왕봉바라기’였다. ‘萬古天王峰(만고천왕봉)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만고의 천왕봉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천왕봉을 같은 사상을 정립하고자 했음이다. 남명사상의 근원이 곧 천왕봉이었다. 남명의 명언은 지금의 천왕봉 표지석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이전에 오래도록 천왕봉을 지켜온 터줏대감이었다. 천왕봉 정상 오석에 새겨진 ‘천명유불명’을 통해 우리는 기개를 길렀고 기상을 드높였다. 청량산이 퇴계 이황의 산이었다면, 지리산은 남명의 산이었다. 동 시대를 살면서 두 거목은 각자의 산에서 학문에 정진하여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우뚝 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쳐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남명 사상은 여전히 퇴계사상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서부경남 지리산권역을 벗어나면 아는 사람이 드물다. 몇 해 전 충청도의 한 군부대에서 진행된 학군단 장교 대상 인성교육에서 ‘신명사도’를 중심으로 한 남명 사상을 강의한 적 있다. 남명의 현실 인식과 시대의 질곡을 헤쳐 나가는 정신을 재조명하면서 그들에겐 생소한 남명 조식과 경의사상을 소개하자 모든 시선이 일시에 집중됐다. 남명의 탁월한 통찰력에 탄복하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교육생들이 많아 남명사상의 교육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짧게나마 남명사상의 교과서 등재를 소망했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진주를 중심으로 한 도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남명 사상과 학문을 교과서에 수록하자는 움직임이 그래서 더 반갑고 기대가 크다. 남명사상 교육지원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교육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남명 사상을 교과서에 실어 남명의 정신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 깊이 공감하면서 힘을 보태고 싶다. 우리가 터잡고 있는 지역 곳곳에 배어 있는 남명의 사상을 널리 알리고 체득할 수 있도록 교과서에 수록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경남지역 교과서는 물론이고 검인정교과서에 수록할 수 있도록 교육감이 앞장서 주기 바란다. 삼가 김해 의령 산청 등 도내 곳곳에 서려 있는 남명 사상이 곧 경남인의 사상이고 한국인의 사상이다. 남명의 성성자 방울 소리가 갈수록 혼탁해지는 세상 깨끗하게 깨어나게 했으면 좋겠다. ‘간수간산(看水看山) 간인간세(看人看世)’ 물과 산을 보고 사람과 세상을 보면서 첫 눈이 내린 지리산 천왕봉을 이번 주말 한 번 올라보면 어떨까. 오르다 힘들면 ‘선업을 쌓는 것은 산을 오르듯 힘들고, 악업은 내려가는 것 만큼 쉬운 일이다’는 남명의 가르침을 음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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