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블라인드 채용 반드시 해야 한다
[경일시론] 블라인드 채용 반드시 해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11.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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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전 아나운서이자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현 국회의원의 발언이 화제다. 자신의 출신 대학이 ‘분교’였다고 하면서, 기업의 채용 과정에 블라인드 채용(출신 학교 정보를 표시하지 않는 것)의 법제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SNS와 일부 커뮤니티에서 각종 이의 제기와 때로는 조롱이 넘쳐난다. 당신이 졸업한 학교는 이제 분교가 아니다부터, 왜 멀쩡한 본교 재학생들까지 분교생으로 만드느냐까지. 제일 기가 막힌 의견은 개인이 노력하여 어렵게 딴 높은 학벌을 왜 가려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면, 명문대 나온 사실이 서류에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아나운서가 나온 대학은 본교와 분교라는 개념이 없다. 크게 보면, 서울에는 인문계열이 많고, 수원에는 이공계열이 더 많다. 양 캠퍼스에 겹치는 전공이나 학과는 하나도 없다. 물론 그 국회의원이 졸업할 때까지는 소위 분교라고 부르기 애매했던 상태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블라인드 채용의 핵심은 본·분교에 있지 않다.

며칠 전 일이다. 같이 공부하는 지도 학생 하나가 박사학위 심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모 대학의 이름 있는 교수에게 심사를 부탁했다. 먼 거리지만, 심사위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논문 심사본을 직접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 꼼꼼한 학자로 정평이 난 그 교수는 본인도 시골 출신으로 유학도 다녀와 서울에서 성공한 분이니, 지역에서 공부하는 어려움과 설움이 뭔지 알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래서 더 유익한 의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소위 지역에서 공부해 봤자 얼마나 제대로 된 논문을 썼겠느냐는 편견을 그 자신이 드러낸 것이었다. 결론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게다.

만약 그 학생이 경남, 그것도 서부경남에서 인구수 35만에 불과한 진주에 위치한 ‘국가거점대학’의 박사학위 준비생이 아니라, 서울에 위치한 나름 이름 들어본 사립대학, 아니 하다못해 옆 도시 부산에 위치한 ‘국가거점대학’ 출신이었더라면 과연 지역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비쳤을지 의문스러웠다. 사실 필자가 이런 모습을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다. 학부생들의 취업, 정확히는 인턴 과정이라도 알아보려고 지인들에게 연락해 보면, 제일 먼저 걸리는 게 그놈의 ‘지방’, ‘지역’ 타령이다. 표면적으로는 서울의 집값부터 거주 문제를 걱정하지만, 서울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부하고 살아온 학생들에게 과연 얼마나 능력이 있을지 의심부터 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출신 지역, 출신 대학이 아닌 그 학생의 포트폴리오나 논문의 결과를 먼저 보는 사람은 정말 찾기 어려웠다.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편견의 굴레는 크다.

블라인드 채용의 법제화는 이런 편견을 깰 수 있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분명하다. 물론 블라인드 채용이 완전히 법제화가 된다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소위 ‘지방대 학생’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특히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 출신의 청년들이 실질적인 경험치를 쌓아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모로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비용 소모가 큰 경우를 고려하면, 서울 청년들의 능력을 능가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일상 혜택의 차이에서 비롯한 작은 요소일 뿐인데, 지역 학생이라는 편견 때문에 최소한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면, 사회로 진출하는 친구들의 삶의 여건을 더욱 어렵게만 만들 뿐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니던가? 지방대 학생이라고 해서 그 능력치가 소위 서울의 대학생들보다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지역 대학이라고 해서 듬성듬성 빼먹거나 덜 가르친 채로 졸업시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일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다르다는 것을. 자신이 배운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이 주신 능력을 펼쳐나가는 데에 학력은 중요치 않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성의를 편견 없이 오롯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으로선 블라인드 채용의 법제화뿐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지방대학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경남이라는 ‘지역’에서 배출되는 인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도 블라인드 채용은 반드시 필요하다.

서유석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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