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나운서이자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현 국회의원의 발언이 화제다. 자신의 출신 대학이 ‘분교’였다고 하면서, 기업의 채용 과정에 블라인드 채용(출신 학교 정보를 표시하지 않는 것)의 법제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SNS와 일부 커뮤니티에서 각종 이의 제기와 때로는 조롱이 넘쳐난다. 당신이 졸업한 학교는 이제 분교가 아니다부터, 왜 멀쩡한 본교 재학생들까지 분교생으로 만드느냐까지. 제일 기가 막힌 의견은 개인이 노력하여 어렵게 딴 높은 학벌을 왜 가려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면, 명문대 나온 사실이 서류에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아나운서가 나온 대학은 본교와 분교라는 개념이 없다. 크게 보면, 서울에는 인문계열이 많고, 수원에는 이공계열이 더 많다. 양 캠퍼스에 겹치는 전공이나 학과는 하나도 없다. 물론 그 국회의원이 졸업할 때까지는 소위 분교라고 부르기 애매했던 상태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블라인드 채용의 핵심은 본·분교에 있지 않다.
며칠 전 일이다. 같이 공부하는 지도 학생 하나가 박사학위 심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모 대학의 이름 있는 교수에게 심사를 부탁했다. 먼 거리지만, 심사위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논문 심사본을 직접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 꼼꼼한 학자로 정평이 난 그 교수는 본인도 시골 출신으로 유학도 다녀와 서울에서 성공한 분이니, 지역에서 공부하는 어려움과 설움이 뭔지 알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래서 더 유익한 의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소위 지역에서 공부해 봤자 얼마나 제대로 된 논문을 썼겠느냐는 편견을 그 자신이 드러낸 것이었다. 결론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게다.
블라인드 채용의 법제화는 이런 편견을 깰 수 있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분명하다. 물론 블라인드 채용이 완전히 법제화가 된다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소위 ‘지방대 학생’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특히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 출신의 청년들이 실질적인 경험치를 쌓아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모로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비용 소모가 큰 경우를 고려하면, 서울 청년들의 능력을 능가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일상 혜택의 차이에서 비롯한 작은 요소일 뿐인데, 지역 학생이라는 편견 때문에 최소한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면, 사회로 진출하는 친구들의 삶의 여건을 더욱 어렵게만 만들 뿐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니던가? 지방대 학생이라고 해서 그 능력치가 소위 서울의 대학생들보다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지역 대학이라고 해서 듬성듬성 빼먹거나 덜 가르친 채로 졸업시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일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다르다는 것을. 자신이 배운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이 주신 능력을 펼쳐나가는 데에 학력은 중요치 않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성의를 편견 없이 오롯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으로선 블라인드 채용의 법제화뿐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지방대학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경남이라는 ‘지역’에서 배출되는 인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도 블라인드 채용은 반드시 필요하다.
서유석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