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까뮈의 가을, 헤세의 가을
[경일춘추]까뮈의 가을, 헤세의 가을
  • 경남일보
  • 승인 2021.11.1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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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수필가)
 



만추다. 황금빛 은행나무, 자홍색 단풍나무, 담적색 화살나무, 검붉은 벚나무. 황토색, 담황색, 노갈색, 적자색, 주홍색…, 형형색색의 저 가을을 두고 까뮈는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 라고 했다. 이에 비해 헤세는 시 ‘낙엽’에서 ‘꽃마다 열매가 되려고 하네./아침은 저녁이 되려고 하네/변화하고 없어지는 것 외에는/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네(중략)…가만히 내버려다오/바람이 그대를 떨구어서/집으로 불어 들어가게 하여라’ 라고 읊었다. 조락의 쓸쓸함도 있고 위드 코로나와도 무관하지 않아서인지 근원을 노래한 헤세의 음성이 깊게 들린다.

11월, 방역 지침이 대거 완화되고 학원, 영화관, 공연장부터 식당, 카페, 목욕업소 등의 제한이 풀렸다. 그 청신호로 개최했던 제70회 개천예술제가 지난 일요일 막을 내렸다. 촉석루 앞 서제식을 50인 범위로 대폭 줄이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서제 발문도 펴자! 나누자! 안아 보자! 는 포용의 슬로건으로 바꿔 걸었다. 뮤지컬 촉석산성아리아, 예술경연대회, 버스킹공연, 각종 전시회도 진주성 안팎에서 차분히 열렸다.

마스크 착용 절대 수칙과 사람 많이 모이는 불꽃놀이, 유등축제, 먹거리, 풍물 장터 아예 없앴다. 그런데도 진주 거리 활기에 찼다. 그 얼굴에 햇살 받은 파안대소와 무게 중심 바로 잡힌 건전한 보폭으로 쾌적한 관람문화 보였다. 어둡던 거리에 네온사인 반짝이고 카페 조명 늦게까지 아늑했다. 식당가 단골집마다 왁자하게 들썩여도 가을밤 애수는 남강에 뜬 달빛으로 달랬다. 지은 죄 없었는데 구속받다가 사적모임 10명까지 허용 받고 숨통이 트였다. 가족모임. 친구모임, 그 뿐 아니라, “한번 봐야지, 그래야지” 했던 말빚까지 갚게 되어 더 반갑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힘들이지 않아도 편안한 관계, 과장하지 않고서도 매끈한 유대감, 성급하지 않아도 무르익는 삶을 만들 때다. 당당하고 호기로운 선택도 있어야겠지만 마음이 흘러가면 가는 대로 멈추면 멈춰지는 대로, 빈 듯 채운 듯이 점멸하는 계절에 동화되어도 좋겠다.

끝물 단풍이 고샅까지 내려와 지척에서 유혹한다. 까뮈의 두 번째 봄도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바람이 떨구어서 집으로 불어 들어가 동짓달 긴 밤을 책을 봐도 괜찮겠다. 티 포트에 끓는 찻물 소리처럼 소쇄하게 지내다 보면 그럭저럭 무탈하게 해를 넘기는 방편도 되니까 말이다.

이정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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