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고들빼기
[경일춘추]고들빼기
  • 경남일보
  • 승인 2021.11.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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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희 (수필가 진주문인협회)

 

늘 있던 자리에 무엇인가가 없으면 퍽 실망스럽다. 시골에 갔다가 이 계절이면 한 바구니 가득 수확했던 장소에 고들빼기가 없어서 한 삼사년을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올 해는 고들빼기를 가득 캐어왔다. 늘 있던 논두렁 밭고랑에서 만나니 몹시 반가웠다. 모처럼 신바람이 났다. 나는 식물에도 좋은 기운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 인류를 돌보기 위해 집집마다 어머니를 주신 것처럼 지리산 신령님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곳곳에 고들빼기를 심어 둔 것이 틀림없다. 뿌리 생김새는 산삼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고 잎은 절개가 있어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

자연산 고들빼기 서식지는 다양하다. 어디나 가리지 않고 자란다. 특히 계단식 논밭의 담벼락 돌멩이 사이에 덥수룩하게 자라는 걸 보면 경이롭다. 깊이 박혀 뽑지 못하게 하며 대를 이어가는 영리함에는 감탄이 절로 난다.

고들빼기를 캐어서 들고 가면 엄마는 언제나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내 딸이 보약을 가져왔다며 좋아하셨다. 소금물에 잠수를 시켜 사나흘 우려낸 후 밥상에 올라온 고들빼기는 인기가 좋다. 가족들이 언제나 나의 공이라 칭찬하니 어깨가 절로 올라간다.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 재미에 눈에 불을 켜고 보아서 그런가 어디를 가도 내 눈엔 고들빼기가 보인다.

이젠 고들빼기 한 바구니를 가져와도 내 딸이 보약을 가져왔다며 좋아하실 어머니가 안 계신다. 고들빼기가 돌아온 것처럼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얼마나 좋을까. “내 딸 저기 고들빼기 천지네 실력발휘 한 번 해봐라.” 무엇이든지 기분 좋게 일 시키던 우리 어머니, 신바람나게 시키는 일 다 해드리고 싶다.

악착같이 챙겨서 주고 싶은 사람, 가져갈 곳이 없으니 매사가 심드렁하다. 상 하나 받아도 함박웃음으로 기뻐해줄 어머니가 안 계시니 자랑이 자랑 같지도 않다.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건 마음 주머니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주머니가 비니 마음이 궁색하다. 어느새 내가 함박웃음을 웃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 있다. 나도 나의 어머니처럼 넉넉한 어머니로 살고 싶다.

어머니께 배워 두지 못한 레시피를 입맛을 더듬어 고들빼기김치를 만들어봐야겠다. 근사한 고들빼기김치를 담아 아들딸에게 보내야겠다. 어디에서나 잘 자라서 품성이 좋고, 자리 구별하여 살 자리 죽을 자리 명확하니 영특하고, 생에 쓴맛을 알리니 사려 깊고, 뿌리 실하여 업적을 남기는 고들빼기는 영험한 식물이라 예의를 갖춰서 다듬고 씻긴다.

민경희 수필가 진주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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