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공돈 대선공약’ 마다한 국민의 나라
[경일시론]‘공돈 대선공약’ 마다한 국민의 나라
  • 경남일보
  • 승인 2021.11.2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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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정재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주 전 국민재난지원금 공약을 고집 않겠다며 철회했다. 국민 1인당 30만~50만 원씩을 새해 1월께 주겠다고 했던 공약이다. 재정 여건이 여의치 않다는 정부 반발에 생각을 굽힌 거란 분석이다. 하지만 국민 여론 때문일 테다. 여론은 이 후보의 이 ‘공돈 공약’에 68%가 반대했었다(한국리서치). 이 후보가 국민과 정부 쪽 반대에 생각을 접은 건 다행이다. 그러나 그동안 후보 편에서 정부를 압박해온 민주당 입장은 민망하게 되어버렸다.

여기서의 국민재난이란 2년을 지속 중인 코로나 사태 속 개개인의 고통스런 삶을 뜻한다. 코로나 불황기에 힘겹지 않은 국민은 많지 않을 테다. 그럼에도 그간 두세 차례 몇십 만 원씩을 받아 소고기도 사먹고 해본 국민 7할이 또 주겠다는 돈 마다한 거다. 공돈으로 인심 사려던 의도였다면 골이 띵했을지 모른다. 고무신 수십 켤레 값의 큰돈에 손사래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은 현명하게도 결국 치르게 될 공돈의 대가를 먼저 염려했다.

이 후보의 현금 공약과 국민 다수의 사양, 호기롭던 약속을 물시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국가가 당신께 무엇을 해 줄 건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까를 먼저 생각하라.”던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 구절. 종종 들어온 말이다. 들을 때마다 참 멋있는 말로 새겼다. 우리는 언제 저런 지도자를 가져보나. 저런 국민이 될 수는 있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그랬는데 어느새 우리가 케네디 어록에 담긴 그 국민이 되어 있다. 그런 국민을 가진 나라가 된 거다. 이번 공돈 반대 여론은 국가더러 뭘 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국가를 위해 국민이 무엇을 해야 할지부터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 기념비적 사례다. 멋진 국민이다.

이에 비하면 지도자 되겠다는 분들의 의식은 뒤처져 있다. 국민이 국가에 정녕 바라는 것이 무언지를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케네디 어록을 대통령 아닌 국민 입장의 말로 바꿔본다면 이렇게 되리라. “국가는 국민더러 나라에 대한 봉사를 요구하기에 앞서 국민을 정말로 잘 받들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지도자가 나라 빚 문제는 제쳐놓고 누구도 마다하기 어려운 공돈 살포부터 생각했다면 우리네 보통국민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친 거다. 현금 몇십 만 원이 지금 국민 일반에 당장 화급한 ‘구명조끼’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기십 만 원의 현금이 국민 섬기는 거라고 믿었더라도 그 빚의 무게는 설명해야 되지 않았을까. 최소한 “이 빚을 갚기 위해선 나중에 국민들이 얼마 동안 얼마만큼 내핍해야 한다.”는 정도는 안내해 주었어야 했다. 그게 국가 지도자가 보여줘야 할 성실성이다. 그도저도 없이 그저, 세금이 많이 걷혀 여유가 있어 돈 나눠드릴테니 걱정 말고 보태 쓰시라고? 무지렁이라도 반문할 게다. “나중에 나라 빚은 누가 감당할 건데?”

반복되는 말이지만 이 후보가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 주겠다고 한 말 거둬들인 건 다행이다. 다수 국민이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일이라는 듯 적잖은 공돈을 거절한 결과여서 다행감은 더 크다. 높은 국민 수준 앞에 감동의 전율마저 느낀다. 하지만 이번 일에 덧붙여 생각할 일이 있다. 그동안 아무 소리 않고 있던 청와대가 이 후보 공약 철회 직후 ‘굉장히 환영할 일’이라고 한 논평 말이다. 대통령도 그제 저녁에야 국민과의 대화에서 선택적 지원이 옳다고 했다. 그간의 ‘전 국민 지원’ 논란에 함구했던 건 비겁한 침묵이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선심성 현금 안 받겠다고 한 국민의 집단지성은 우리 역사에 두고두고 기억돼야 하리라. 나아가 이제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게 있다. 모래알 같은 개개인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 표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느냐고 비관하지 말자는 거다. 당장 눈앞에 다가오는 선거에서 투표 한 번 성심껏 하는 게 나라를 위한 일임을 명심하면 된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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