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가지치기
[경일춘추]가지치기
  • 경남일보
  • 승인 2021.11.2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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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시인·프리랜서)
 

 

겨울 입구에 들어섰다. 한 해를 살면서 온갖 풍파를 견디며 각종 사연을 달고 자라던 나무들이 이제 한숨을 돌릴 귀한 틈을 얻게 되었다. 여름날 매미의 붉은 사랑을 고이 품었던 낙엽 활엽수들은 애달픈 그들의 뜨거웠던 추억을 토해내느라 노래졌던 얼굴을 가다듬을 것이며, 하늘에 뜻을 둔 낙엽송은 가지런히 손을 모아 감사 기도를 드릴 것이다.

이제 나무 가지치기의 계절이다. 잡목은 베어져서 불쏘시개가 될 것이고, 장작은 가마솥의 잉걸불이 될 것이다. 촘촘하게 자란 나무는 적당한 간격에 맞추어 베어지고, 곁가지는 낫이나 톱, 또는 도끼로 쳐내어 햇살이 잘 들게 하여 올곧게 자라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면 온 산에 햇살이 고루 들어 나무는 시름을 잊고 짱짱하게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산에 들면 무섭지가 않다. 푸른 하늘이 보이고 나무는 올곧으니 마음이 시원해져 절로 힐링이 되니 말이다. 그러나 온갖 잡목이 뒤엉켜 있는 산은 길이 보이지 않으니 실족하기 쉽고, 음산한 기운으로 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멀쩡한 뼈가 마디마디 쑤실 것 같다. 예전에는 땔감을 얻을 목적도 있었지만 훌륭한 목재로 키우기 위해서도 나뭇가지를 쳤었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모두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했었다. 그랬던 시절이 농가 개량과 농업 인구수 감소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산이 황폐화가 되었다. 나무가 없어서 황폐화가 된 것이 아니라, 관리가 되지 않아서 황폐해진 것이다. 쭉쭉 뻗어 잘 자란 나무로 인하여 무성해진 산이라면 그저 반갑고 기쁜 일이겠지만, 제때 관리를 하지 못해서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온갖 잡초와 잡목들로 뒤엉켜서 길은 보이지가 않고, 한 뼘 푸른 하늘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산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름난 산들이야 관리가 잘 되어 산길이 밝고 등산로도 좋아서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산들은 사람 발길을 거부하는 산이 되고 말았다. 고향의 우리 산도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해마다 가지치기를 해서 산의 나무들이 주인을 닮아서 키가 컸고 모두 인물이 훤했다. 그러나 돌아가신 이후로 고향 산도 이내 황폐해졌다.

산은 일 년에 한 번만 가지치기를 해도 되지만, 마음은 산과 달라서 시도 때도 없이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사념(邪念)들이 웃자라서 정서가 황폐해지기 쉽다. 지나친 탐욕과 욕망은 패가망신은 물론이고 자신을 죽이기까지 한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는 재목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듯 마음의 잔가지들도 쳐내지 않으면 ‘넘어짐의 선봉’이 될 것이다. 오늘은 어떤 독소를 마음에서 쳐내야 할지 지혜의 낫과 도끼를 들고 마음의 산을 샅샅이 살펴봐야겠다.

이정희 시인·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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