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산골 유언
[천왕봉] 산골 유언
  • 경남일보
  • 승인 2021.11.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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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청산리 벽계수야…’로 이름난 조선 여류시인 황진이는 거침없는 남성 편력으로도 유명하다. 죽음에 이르러 남긴 말도 그의 시조 못지 않게 널리 회자된다. “내 시체를 그냥 동문 밖에 던져두어 날짐승 길짐승들이 뜯어먹게 해주오. “뭇 남자들을 탈선시킨 죄를 지었으니 여인네들을 경계하는 거울로 쓰라는 보시(布施)였다. 하지만 방치된 시신을 누군가가 거두어 묻어줬다. 경기도 파주에 무덤이 있다.

▶중국 공산당 혁명을 이끈 모택동은 매장 풍속에서 화장 문화로 장례 전통을 바꿔놨다. 그 자신도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처럼 방부 처리되어 북경 모택동기념관에 안치됐다. ‘위대한 절대 권력’의 엄명이 무색토록 산 자인 양 유리관에 뉘어 만인의 볼거리가 돼 있는 것. 생전 그의 화장 희망이 먹혀들지 않은 거다.

▶등소평도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흩으라고 했다. 이른바 산골(散骨) 유언이다. 그는 화장되어 유분이 발해만에 뿌려졌다. 그런데 그 영정과 유품들은 묘역보다 결코 초라하달 수 없는 등소평기념관에 진열돼 있다. 본인 뜻과는 달리 사후에도 생전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거다. 이처럼 사람들은 ‘내 시신을 화장하여 흩어버리라’고들 곧잘 말한다지만 뜻대로 안 되고 마는 걸 종종 본다.

▶지난 23일 90세로 생을 닫아간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평소 ‘나 죽거든 화장하여 뿌려버려라’고 했단다. 가족은 이를 유언으로 삼아 27일 가족장으로 화장키로 했다. 그러나 장지는 전방 어느 곳이 될 거라고 하니 유분을 날려버리는 건 아닐 듯하다. 그 주검 역시 살아생전의 뜻대로 안 되는 거다. 장례건 유산이건 죽은 이의 것은 산 자들 몫일 수밖에 없음을 예서 또 본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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