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일두 정여창과 시민 정신
[경일포럼]일두 정여창과 시민 정신
  • 경남일보
  • 승인 2021.11.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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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호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입동을 지나 만추(晩秋)의 계절에 반백 년 동안 정리(情理)를 나눈 친구 셋이서 밤늦도록 정담(鼎談)을 나누었다. 무너져 가는 도덕과 정파에 얽힌 세상사를 탄(嘆)하다, 흐드러지게 널린 낙엽을 밟으며, 선비의 고장 경남 함양에 있는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을 찾았다.

조선 시대 양반의 문벌을 평할 때 흔히 ‘좌안동 우함양’이라 한다.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안동에는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진성 이씨 등 우리나라 최대의 문벌을 형성하고 있어 정신문화의 산실로 칭하고 있다. 낙동강 서쪽에 자리한 함양은 하동 정씨, 초계 정씨, 풍천 노씨 등 3개의 가문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많은 인재가 배출된 고장이다. 좌안동의 대표적 인물이 퇴계 이황 선생이라면, 우함양은 바로 일두 정여창 선생이다.

일두 선생의 품성은 그가 기거하였던 일두고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두고택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사랑채다.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지만, 그곳엔 댓돌이 하나 있다. 그 댓돌은 하인과 이야기할 때 하인을 그곳에 올라오게 함으로써 아랫사람과 눈높이를 같이 하겠다는 평등의식이 깔려있다.

일두고택을 보면 그의 삶의 궤적을 읽을 수 있다. 일두 선생(1450~1504)은 문신 겸 학자로 겸양과 지행합일의 선비 세계를 실천한 학자이다. 선생의 겸양은 자신을 ‘한 마리의 좀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일두’로 정한 자신의 호에서 알 수 있다. 동방오현(東方五賢)의 한 사람인 일두 선생이 보인 학행(學行)의 정수(精髓)는 인간다운 삶을 향상시키는 지행일치의 선비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성종 25년 안음(함양의 옛 지명) 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조세로 고통받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야 할 10가지 규칙인 ‘편의수십조(便宜數十條)’를 지어 시행한 지 1년 만에 정치가 맑아지고 백성의 삶이 윤택해졌다.

선생의 지행일치 정신과 겸양의 품성에서 무너져 가는 현대 정치인의 도덕성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 자리씩을 차고 있는 고관대작들의 한결같은 내로남불은 차지하고, 대선을 향하여 열심히 뛰고 있는 후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최고의 도덕성과 정치력이 요구되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형수에게 입에 담지 못한 욕설을 하고, 유명 연예인과 불륜설이 공공연히 나돌아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권이다.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라 자랑하며 1100배의 수익을 몇몇 내부인에게 안겨 준 ‘권력 찬스’의 대장동 비리는 경제질서와 도덕 그 자체를 무너뜨린 사건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이어 불거진 종합부동산세에서 국민을 또 한 번 갈라치기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 98%가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며 징벌적 과세로 국민 2%와 편가르기 한다.

국민에게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시민과 백성 그리고 민초로 나뉜다. 민초는 무지렁이로 무지하여 복종하는 국민이다. 이들은 몇 푼의 돈(포퓰리즘)에 약하며 마약같이 중독되고 독재자에 의해서 쉽게 다스려진다. 다음 등급이 백성이다. 글자도 알고 의식도 있지만, 행동하는 양심이 결여된 국민이다. 세 번째 등급이 시민이다. 이들은 의식이 있어 불의에 항거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에게는 일찍부터 시민 정신이 살아있다. 4·19가 시민 혁명이고, 5·18이 시민 혁명이며, 6·10 항쟁이 시민 혁명이다. 그리고 65%의 국민이 기본소득을 반대하고, 여당에서 밀어붙인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60%의 반대로 포기하게 한 것은 시민 정신의 승리이다. 국민 2%도 우리 국민임을 알아야 한다. 부당하게 편중된 부동산세가 ‘편의수십조’가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한 과세가 ‘편의수십조’의 개념으로 일두 선생의 정신이다. 일두 선생 정신의 실천을 위하여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선진 시민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이웅호(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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