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는 어디로 가는가
[경일시론]‘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는 어디로 가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21.11.29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로버트 프로스트는 미국의 ‘계관시인’이다. 계관시인이란 국가나 왕실이 뛰어난 시인을 임명해 공식행사 때 시를 지어주기를 요청하는 명예직이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전통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는 미국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1894년 첫 시집을 출간한 이래 여러 시집을 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시는 단연 1916년 발표된 ‘가지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일 것이다.

“노란 숲 속에 두 길이 갈라졌지. 나는 두 길을 다 갈 수 없고 한 길만을 가는 것이 아쉬워 오랫동안 서서, 저 아래에서 그 길이 굽어지는 곳까지 가능한 한 멀리 내려다 보았네… 오, 나는 다른 날을 위해 한 길을 남겨 두었지! 하지만 길이 어떻게 다른 길로 이어지는지를 알기에,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힘들거라 생각하며, 나는 먼 훗날 나이 먹어 어디에선가 한숨을 지으며 말하리라: 숲 속에 두 개의 길이 갈라져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니는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손자병법’에 ‘기정(奇正)’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쟁에서 지지 않는 것은 이 ‘기정’에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다. 승리를 위해서는 비정규 전술(奇)과 정규 전술(正)을 둘 다 잘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전쟁사를 살펴보면 지휘관들은 그 기발함 때문에 비정규 전술을 선호하는 예를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1939년 일본과 소련이 크게 충돌한 ‘노몬한 사건’에서 소련 탱크가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것에 착안한 일본군은 화염병을 만들어 적의 탱크를 파괴했다. 그러나 이후 보병의 화염병으로 탱크를 잡을 수 있다는 과신으로 대전차무기를 개발하는데 소흘하게 되어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미군에게 톡톡한 댓가를 치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4년이 훨씬 지났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실제로 출범 이후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기치 아래 단행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필두로 재정투입에 의한 공공부분 일자리 만들기, 노조 우대 등 전통 경제학 이론과는 다른 파격적인 경제정책을 펴왔다. 손자병법을 빌려 평가해 보자면 정(正) 보다는 주로 기(奇)에 의존한 정책들이다. 애써 찾아보면 일부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나 지금까지 이들 정책들의 종합성적표는 매우 실망스럽다. 청년실업률 급등에다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급속히 줄어드는 일자리, 우려스러울 정도로 빨리 늘어나는 국가 부채는 차치하더라도 10여 년 만의 최대 마이너스 성장률, 최근 5개월 연속 역신장하는 수출은 부정적 통계의 일부분일 뿐이다.

일부 긍정적인 효과에 집착한 탓인지 이런 정책기조를 바꿀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경제정책의 기조와 큰 틀을 바꾸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상하지 못하고 살펴보지 못한 부분도 있으며, 가보지 못한 길이어서 불안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가야하는 길”라고 언급했다. 과연 이 판단이 옳은 것일까? 그래서 한국 경제가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인가?

그런데 애초 이 정부에서 ‘소주성’의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청와대와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모두 현직이 아니다. 마치 그들도 이럴 줄 알고 중도하차를 결정한 듯한 모습이다. 그 후임자라도 전임자의 잘못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꾼다면 책임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