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별명
[경일춘추]별명
  • 경남일보
  • 승인 2021.11.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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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시인 프리랜서)
 



사람의 외모나 성격, 행동 특성과 특징을 바탕으로 남들이 붙여주는 이름을 별명이라 한다. 별명이 많기로는 추사 김정희가 단연 1위다. 그는 500개나 있다고 한다. 물론 시·서·화에 능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이런 별명 하나 없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어떤 별명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별명이 있는 아이들은 성격이나 특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하나같이 이름자의 유사성에 의한 별명들뿐이었다. 대부분은 별명이 없거나 관심이 적었다. 하긴 세상이 바뀌어 도타운 정(情)의 관계보다 기계적인 관계로 치닫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인간적인 관계가 메마른 요즘 시대의 서글픈 현실을 보는 듯하여 가슴이 살풋 아렸다.

우리 또래의 학창 시절은 이름보다 별명이 통했다. 나에게도 별명이 여러 개였다. ‘원더우먼’, ‘족집게 도사’, ‘개미허리’ 등 별명을 들으면 나의 외모 특성이나 성격, 행동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별명들이다. 선생님들의 별명도 다양했다. 몸집이 뚱뚱했던 가정 선생님은 ‘시어머니’였는데,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유익한 말도 꼭 못된 시어머니처럼 재수 없게 내뱉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한 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다혈질 수학 선생님은 ‘홍익인간’이었다. 항상 얼굴이 벌개가지고 아이들의 잘못하는 점만 살폈지만, 수학 실력만큼은 으뜸이었다. 도형을 그리는 것도 한 치 오차도 없는, 정말 수학적 ‘홍익인간’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자율시간 등 하루에도 빠짐없이 세 번 옷을 갈아입고 오셨던 ‘칠면조’ 가사 선생님, 얼굴색 붉고 키가 큰 ‘홍당무’ 과학 선생님은 너무 순하셨고, 웃기게 생긴 대머리 ‘민둥산’ 지리 선생님, 음조가 변화 없는 코쟁이 ‘피노키오’ 영어 선생님 등…, 그리운 친구들도 그렇다. ‘호박의 손톱’인 영욱이는 눈이 작고 아주 가늘었다. 그래서 호박에 손톱자국을 낸 것처럼 보여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빨간 분필 돼지코’ 친구도 있다. 이 친구는 간 크게 고개를 쳐들고 대놓고 자다가 홍익인간 선생님이 던졌던 빨간 분필이 오른쪽 콧구멍에 그대로 꽂혀서 그날로 ‘빨간 분필 돼지코’가 되었다.

이처럼 별명은 정겨워서 세월이 지나도 그 시절 그 장소로 데려간다. 또한 그 인물을 떠오르게 만들고 그 주변까지도 데려온다. 이름은 내 것이지만 남들이 사용하고, 별명은 남이 붙여주지만, 자기에게 평생 꼬리표가 달려서 어디를 가든지 떨어지지 않으니 근사한 별명 하나쯤 가져봄직도 좋겠다.

이정희 시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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