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4]반 고흐 미술관 ‘감자먹는 사람들’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4]반 고흐 미술관 ‘감자먹는 사람들’
  • 경남일보
  • 승인 2021.12.0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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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정직함 보여주는 진실된 삶의 모습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흔적을 찾아 네덜란드와 프랑스 일대를 찾아다녔던 재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그 여정은 고흐가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낸 지역을 둘러보고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잠시나마 그의 시선과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고흐가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은 프랑스 파리의 화단이 폭발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와 겹친다. 게다가 고흐의 화풍이 파리의 화가들과의 조우하며 급격하게 변한데다 프랑스에서 많은 대표작이 탄생되었기 때문에 고흐의 이름은 프랑스 출신 화가 마네, 모네, 세잔 같은 이들과 같이 언급되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고흐가 태어나고 그의 가치관이 형성되었던 곳은 네덜란드라는 점을 조심스레 강조하고 싶었다. 고흐를 더욱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잘 해석하기 위해서는 특히 그의 유년 시절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했다. 한 인간으로써의 고흐와 화가 고흐가 탄생하게 된 기반이 그의 고향 네덜란드라는 사실은 마치 책의 가장 앞에 있는 머리말 부분을 읽는 것과 같았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고흐의 대표작을 더욱 이해하고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가 화가 인생을 시작한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작품에게도 시선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고흐의 첫 번째 걸작

암스테르담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반 고흐 미술관에 방문한다. 화가의 이름을 내걸고 방대한 컬렉션을 가진 미술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어 반 고흐 미술관의 작품들은 늘 관람객으로 둘러싸여 있다. 반 고흐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해바라기’와 ‘아몬드 꽃’이다. 이미 워낙 유명한 두 작품은 캔버스 위를 장식한 노란색과 푸른색이 고흐의 드라마틱하면서도 애달팠던 인생을 보여주는 듯해 관람객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는다.

그렇지만 고작 10년밖에 안 되는 짧은 화가생활 동안 800여점이 넘는 작품을 그린 고흐를 몇몇 작품만으로는 전부 이해 할 수는 없는 법.
 

 

이번 만큼은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벗어나 다른 작품에 눈길을 돌려 보도록 하자. 비록 샛노란 해바라기의 아름다움에는 못 미칠지도 모르지만, 오늘 주목할 작품은 화가로 성공 하고 싶었던 고흐의 노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그의 첫 번째 걸작 ‘감자먹는 사람들’이다.

젊은 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방황하며 여기저기 떠다니던 고흐는 1880년 마침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알려진 대로, 전문적인 그림을 공부 한 적이 없었던 고흐는 예술가의 길을 걷기에는 꽤 늦은 나이에 그림의 기본기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랬던 그가 그림에 입문한지 5년 만에 ‘감자먹는 사람들’을 그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흐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그의 후기작품에 속하기 때문에 어두운 색상을 사용해 그린 이 그림이 생소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밝은 색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데다가 세월의 흔적으로 더욱 어둡게 변해 버린 이 그림은 사실 화가가 엄청난 노력을 쏟으며 성공을 기대했던 작품이다. 고흐가 화가로써 작품 활동을 하며 자신의 작품에 스스로 만족하여 걸작이라고 언급한 그림은 총 네 점뿐이다. ‘침실, The Bedroom’, ‘해바라기, Sunflowers’, ‘룰랭부인의 초상(자장가), Augustine Roulin (La berceuse)’ 그리고 ‘감자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만이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앞서 언급한 세 점의 그림은 고흐가 프랑스 남부 지방 아를에 머물면서 1888-1889년 사이에 그려진 그림이다. 반면 ‘감자먹는 사람들’은 1885년 부모님 댁이 있던 뉴넨에 머물면서 그린 그림으로 네 작품들 중 가장 초기 작품인데다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그의 유일한 걸작인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가 막 시작되었는지 쟁반에 담긴 감자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 앉은 여성은 흰 그릇에 커피를 나눠 담고 있다. 커피로 감자의 퍽퍽함을 달래려는 듯 한 잔 가득하다. 다섯 가족이지만, 한사람은 등을 돌리고 앉아 그 얼굴을 알 수 없다.

투박한 선과 거친 붓질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조금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인물들의 표정에서는 웃음기가 거의 보이지 않아 화기애애한 저녁식사 분위기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고흐는 램프 등의 빛이 들지 않아 눈길이 잘 가지 않는 배경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왼쪽 벽에 붙어 있는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다. 창밖으로 짙은 어둠이 내려있음을 감안한다면 가족들은 하루 일을 끝낸 후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계 옆으로 걸린 액자 안으로는 조그마한 십자가도 눈에 띈다. 오른쪽 벽에는 숟가락도 걸려있다.

그림의 가장 왼쪽에 앉은 남자의 의자 뒤편에 자신의 사인까지 남겼던 고흐는 첫 걸작이 될 이 그림에 남다른 정성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지나 더욱 어두워져버린 캔버스 때문에 그의 사인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감자먹는 사람들’은 화가로써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고흐의 야심작이었던 듯하다. 고흐는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게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계획을 세웠고 고흐의 그러한 노력은 작품 속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기 수개월 전부터 마을 주민들을 모델로 하여 초상화를 연습했다. 그 중 몇 명은 ‘감자먹는 사람들’속의 주인공들과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는데, 무명화가에게 기꺼이 모델이 되어준 그들은 평소 고흐와 잘 알고 지냈을 것이다. 고흐는 그림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 스케치와 디테일을 미리 구상 했고 전체적인 구도를 계획하여 예비 작품까지 그렸다.

갯벌이 떠오르는 그림의 어두운 회색 또한 고흐의 연구로 탄생됐다. 그림을 그리며 보색에 대하여 실험했던 것이다.

보색은 색상환에서 서로 반대 부분에 위치한 색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빨강과 초록, 주황과 파랑색의 관계 같은 것이다. 보색 관계를 형성하는 두 가지 색상을 각각 정확한 양으로 섞으면 회색을 띄게 되는데, 그 양을 조금씩 달리 하면 그림에서처럼 회색 톤을 머금은 다양한 색으로 표현 할 수 있다. 한편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효과에 대해서도 연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림의 상단에 그려진 등잔불에서 뻗어나가는 빛을 중심으로 밝고 어두운 부분을 구분지어 사진 같은 느낌이 든다. 캔버스를 앞에 두고 여러 가지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을 고흐의 모습을 상상하니 쉽게 다른 그림 앞으로 이동하기 힘들었다. 내게는 이 그림이 고흐를 화가로 살아가게 만든 원동력처럼 느껴졌고 그의 다른 걸작들을 예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걸작인가 실패작인가

걸작의 탄생을 기대했던 고흐는 그림이 완성되기도 전에 석판화로 제작한 그림을 화랑에서 일하던 동생 테오에게 보내며 미리 홍보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스스로 걸작이라 칭했고 성공을 확신했던 작품이었지만 고흐는 이 그림으로 자신이 바라던 파리 화단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의 생각과 달리 주변의 반응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행이었던 파리 화단의 화풍에 크게 벗어나 있어서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그림의 구도나 형태가 미흡하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지배적이었다.

이후 고흐는 프랑스로 거처를 옮기면서 작품 스타일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흐의 대표작들은 이때부터 그린 그림이다. 고흐는 생의 마지막 즈음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우울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자신이 그렸던 ‘감자먹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을까. 고흐는 이 그림의 새로운 버전을 생각하게 된다. 네덜란드에 남아있던 가족들에게 그가 남기고온 스케치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실제로 구상 스케치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결국 캔버스 위에서 완성 되지는 못했다.

만약 고흐가 그 해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고흐의 또 다른 ‘감자먹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고흐가 그림을 완성했었더라면 그 모습은 어땠을까. 그 사람들은 여전히 감자를 먹고 있었을까? 캔버스 위는 여전히 잿빛이었을까 아니면 고흐만의 색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



주소: Museumplein 6, 1071 DJ Amsterdam, 네덜란드

운영시간: 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입장료: 성인 19유로, 18세 이하 무료

홈페이지: https://www.vangoghmuseum.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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