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72)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72)
  • 경남일보
  • 승인 2021.12.0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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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개천예술제 70년 기념 문학부 이경순 시인 기타(1)
개천예술제 초기 진주 주최측의 주요문인은 동기(東騎) 이경순이다. 이 시인은 1905년 진양군 명석면 외율리 태생인데 파성 설칭수보다 11살 연상이다. 이 나이 차이를 두고 놀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나 연상인 동기 시인이 파성이라는 간판 뒤에 숨겨져 있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기 동기의 인상은 점잖고 노숙하고 머리가 운하 모습으로 벗겨져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동기 이경순은 1930년대 일본에 건너가 참으로 못말리는 아나키즘 운동에 20여년을 동경일대를 헤집고 다닌 사람이었다 .아나키즘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유학파 중에서도 무정부주의를 부르짖으며 속으로는 나라찾기의 최일선에 서서 메이 데이 행렬에 참가하고 저돌적인 행위에 젖어 머리에는 태극기를 둘러쓰고 다녔던 행동파였다. 술집에서도 유랑민으로서 아리랑을 부르고 술상을 뒤집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광복후 귀국하여 호를 스스로의 행동에 비추어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를 닮았다는 뜻으로 ‘동기’라 칭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동쪽으로 가는 기사라는 의미일 것이다. 주인공 동키호테가 기사 이야기책을 탐독하다가 망상에 빠져 산초 판자와 같이 기사수업을 다니면서 기지와 풍자를 곁들인 온갖 모험을 한다는 소설이 동키호테이다.

동기 시인은 부친이 한말의 궁내부 주사로 있었는데 수륜과에서 일했다. 수륜과는 전국의 물방아나 관개사업을 총괄한 부서였다. 그러나 경술국치를 앞두고 관직을 버리고 진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은둔생활을 했다.

외율리 마을은 지리산 줄기가 이어져 내려온 병풍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70여호 정도의 마을이었다. 시인의 집은 마을에서 갑부 소리를 들었다. 그는 어려서 서당에서 한시를 지어 칭찬을 듣기도 했다. 시인은 나이 열세살 되던 해에 초립을 쓰고 사인거를 타고 장가를 갔다. 첫날밤 화촉으로 밝힌 동방에 병풍이 둘러 있고 신부가 단정히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주안상이 놓였다. 유과와 과일이 얹혀 있는 상 위에는 백자병에 방순 청주가 가득차 있었다.

이윽고 신랑은 남자란 자의식에서 먼저 자작 자음을 시작했으니 짜릿하고 달콤한 맛과 훈향에 한 병을 다 마셨다.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니 천정이 내려앉고 방 안이 돌아간다. 초립 쓴 채로 도포 입은 그대로 몽롱한 도취의 잠길로 들어갔다.

그후 동기는 고향을 떠나 이역에서 20년간을 유랑하다가 돌아왔지마는 그날밤 신부로 동방에 단정히 앉았던 아내는 20년 전에 먼저 영원으로 떠났고 가련한 혼야의 스스로의 도취했던 회상만 오늘에 떠오른다. 기미 3·1운동의 민족 봉기를 계기로 해서 동기 머리 위에 묶어 얹힌 상투를 깎아버리고 신학문을 배워야 겠다고 동경에 있는 어느 학교에 입학했다. 집안 어른들의 말은 졸업을 한 뒤에는 벼슬을 해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이 창백한 청년은 하필 문학에 집념을 두고 습작도 했으며 특히 시문에 대한 꿈과 이상이 강하게 의식되었다.

그때 이민족의 지배에 압박당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자유를 원하여 차라리 반항을 택하는 것이 지당한 노릇이라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동기는 이 결론을 얻고 난 뒤 하기방학에 귀향해서 진주에 있던 시인 김병호씨 소개로 조선일보에 ‘백합화’란 시편을 발표하고 다시 동경으로 들어가 문학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문학을 할 수 있는 자유스런 정신상황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동경에 있는 사상단체 ‘흑우회’동지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동기가 동경 어느 학교재학 2학년이 되던 해인데 일본 천황이 즉위식을 거행하던 해로서 그때 각 대학의 학생층에서 사회과학의 왕성한 연구가 논의되었던 정황 파악을 한 동경 경시청에서는 예비 검속에 들어가 있었다. 이를 피해서 동기가 가담해 있는 흑우회의 정태성과 함께 진주로 귀국했었다. 이곳에서 동경농업대학 재학중인 홍두표와 함께 세 사람이 문산에 있는 청곡사에 체류하면서 시를 쓴다고 핑계하고 있었다. 실은 아나키즘 연구로 허무조직과 환상건축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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