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거창박물관
[경일칼럼]거창박물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12.06 14: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명영 (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수남로 접어들어 경남도립거창대학을 왼쪽에 끼고 오르막길을 오르자 거창박물관 이정표가 반긴다. 입구로 들어서면 연자(硏子)방아를 볼 수 있다. 곡식을 찧는 오래 전에 역할이 끝난 도구이다. 고줏대는 뽑혀져 중심을 못 잡고 뺑이는 간곳 모르고, 井자형 방틀은 숫돌을 벗어 난 기억조차 없다. 고줏구멍과 뺑이구멍이 남아있는 퇴물은 세월을 비켜나 덩그러니 놓여있다.

12계단 축담을 돋우고 덩실하게 기와집을 앉혔다. 현관 바닥에 도형이 그려진 타일을 짜 맞춘 지도를 유성호 문화해설사가 고운 목소리로 설명한다.

거창 군현지도로 동서남북을 십이지로 표시하고 있다. 직선이 남에서 금귀산봉대과 주말흘산봉대를 거쳐 북으로 이어지는데 산 정상에 초소를 세우고 ‘봉대(烽臺)’를 첨가한 것이다.

거창(居昌)은 물이 맑고 빼어난 자연 경관과 유서 깊은 역사, 찬란한 전통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으로 거타(居陀), 거열(居烈) 등으로 불리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전국 지명을 중국식 2글자로 개칭함에 거창이 되었고, 아름다운 숲이 있기에 아림(娥林)이라고도 불린다.

거창 지역은 대가야에 속했다가 562년 신라 영토가 됐다. 642년 백제 의자왕이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하여 신라 서북부 40여개 성을 장악하였는데 부여윤충 장군은 합천 대야성을 함락시켰다. 660년 백제 멸망 이후에도 부흥군이 거열산성을 거점으로 치열한 항쟁을 전개했다. 신라 문무왕 3년(663) 거열성을 되찾을 때까지 이 지역은 백제 수중에 있었다. 당나라와 통일전쟁에 대비하여 문무왕 13년(673)에 축성할 정도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열산성을 한창 복원하고 있다.

안음은 음기가 세다하여 안의(安義)로 되었고 산청(山淸)도 산음(山陰)에서 기원하였으며 수승대는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라 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가 퇴계 이황이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지어 명칭을 고칠 것을 권해 ‘빼어난 경치가 근심을 잊게 한다’는 뜻의 수승대(搜勝臺)로 바뀌었다.

둔마리 고분과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남하면 둔마리 금귀산 능선에 위치한 고려시대 고분이다. 13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석실 내부가 동서로 구분되었고, 동실 벽면에는 천녀들이 구름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춤추는 주악무도천녀도(奏樂舞蹈天女圖)와 서실에는 남자와 천녀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석실 사이에 살 없는 문을 내어 영혼들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겠구나!

지하 1층의 상반부는 이 지역의 인물 소개 및 각종 민속품 등을 전시했다.

곽종석 선생은 거창 가북면 다전마을에 머물면서 파리장서(巴里長書)을 주도하였으며 연서인 137명 중에 거창 사람은 7명이다.

이보흠(李甫欽 ?~1457)은 조선 시대 문신, 세조 3년(1457) 순흥부사로서 순흥 조개섬에 유배와 있던 금성대군과 단종 복위를 도모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이보흠의 아들 이간인(李肝仁)이 삼족(三族) 멸문의 화를 피해 남하면 오가리에 숨어 들어와 살다 그의 아들(이근, 이지, 이식)이 웅곡으로 옮겨와 살면서 거창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영조 14년(1738) 이보흠의 관직이 복원되어 직첩이 내려졌고, 정조 15년(1791) 충장(忠莊)이란 시호를 내렸으나 후손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108년이 지나 직첩을 가져와 웅곡 종가에 모셨다.

연자방아에 나락을 넣고 고줏대를 세워 뺑이를 꽂고 방틀을 끼워 돌리면 하얀 쌀이 나오듯, 어둠 속 향토 사료를 햇볕 속으로 옮겨 찾는 이 지혜를 밝히는 으뜸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