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세모밑 유등축제, 더 편안하다
[경일춘추]세모밑 유등축제, 더 편안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12.0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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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경해여중 교사·수필가)
 



12월, 위드 코로나의 위기와 오미크론 불안 속에 유등 축제가 개막했다. 초혼 점등식 점화 동시에 주변의 모든 등불이 일제히 켜졌다. 축제기간이 2주에서 28일 간으로 늘어나고 마지막날까지 한다니 왠지 편안했다.

마침 서울에서 온 손님이 있어 진주교로 나섰다. 그는 “청계천의 서울빛초롱축제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며 감탄했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밤공기와 움직임이 없는 듯한 평온한 거리가 안식처 같다”는 말에 “양반 고을 진주라서 그렇다”고 답했다. 어둠과 밤 앞에서도 위용을 잃지 않는 촉석루와, 나무와 나무 사이의 정적, 작으면 작은 대로 제 빛을 갖고 있는 색색의 조명까지 탐을 냈다. “북쪽인 진주성을 중심으로 동쪽의 선학산, 남쪽의 망진산, 서쪽의 진양호에 둘러싸인 물의 축제를 이토록 가깝게 언제 보겠냐”며 1부교를 돈내는 줄도 모르고 왔다갔다 자꾸 했다. 편도 2000원인데 얼마나 들었는지.

예부터 진주는 활발한 교역으로 시장이 발달했고, 바다와 산이 가까워 풍부한 물산으로 유복한 삶이었다. 일찍이 싹튼 민의는 훗날 형평운동 되어 일어났다. 임진왜란 진주대첩 2차 전투로 7만여 민관군이 순국했다. 임란과 죽은 이의 혼백을 기리는 진혼 제의에서 비롯된 유등축제의, 국가적인 명분과 슬픈 유래와 수 많은 인물들의 비사와 장구한 세월을 꿰어 스토리텔링 하자 했다. 세계 어디에도 드문 축제라고 호들갑 떠는 서울깍쟁이들이 축제보다 더 요란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유등 띄우기는 가장행렬과 함께 개천예술제의 대표 행사였다. 역사 인식은 어렸지만 뭔지 모를 엄숙함에 이끌렸다. 동원 된 학생들이 남강에 어스름이 내릴 때를 기다렸다가 성스럽게 등을 띄웠다. 가물가물 꺼질 듯 둥둥 떠가는 등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차마 지키다가 서럽게 우는 친구도 있었다. 자빠지는 등, 멀리 멀리 잘 가는 등. 막연한 동경을 실어 띄웠던 그때의 등 이후로 소망등, 창작등, 풍등, 세계풍물 등으로 확대되었다가 코로나로 싹다 줄였다.

세밑이다. 차제에 진혼제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고 연말 축제로 고정하면 어떨까. 런던 템즈강 불꽃 축제처럼, 뉴욕의 크리스마스 점등식, 혹은 타임스퀘어처럼 말이다. 유료화니, 개천예술제와 같이 하니 안하니 하는 것보다 가는 해를 차분히 응시하는 빛의 축제가 되었으면 해 본다.

이정옥 경해여중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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