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40] 통가왕국의 장례식
도용복의 세계여행[40] 통가왕국의 장례식
  • 경남일보
  • 승인 2021.12.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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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이 모두에게 축제가 되기를
장례식장의 여인들(상주)이 통가인들의 전통인듯 나무로 엮어 만든 숄더를 걸치고 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통가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그의 이름은 ‘뚜이’ 였다. 뚜이 목사에게 초대받은 나는 그곳에서 일정기간 같이 생활했다.

교회에는 허드렛일을 맡아하는 ‘이든’이라는 교인이 있었다. 그는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었지만 교회의 전도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별로 바라는 것 없이 사흘동안 내게 친절을 베풀었다. 예를들면 주유할 때 주유소 가게에 들러 내가 먹을 땅콩까지 사준다든지, 식사 전 의자를 바르게 놓아준다든지하는 것들이었다.

첫날 뚜이 목사와 같은 차에 5명이 타고 올 때는 말도 없이 과묵했던 그였다. 하지만 나와 둘만이 다니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어눌하지만 영어와 바디 랭귀지를 섞어서 지역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설명해줬다.

한국에 대해서는 시내에 있는 한국식당 밖에 모르던 그가 어디서 배웠는지 더듬거리면서 한국어로 말했는데, 또 나는 용케도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와 같이 있으면서 벌써 이야기거리가 생겼다. 장례식장을 지날 때였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는데 웬일인지 분위기에 맞지 않게 무덤 앞에 사람들이 모두들 웃으며 지나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급히 다가갔다. 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해왔다. 나도 고개를 숙이면서 답례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씩 공통점이 있었다. 한쪽 손에 무거워 보이는 봉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봉지 안에는 똑같이 생닭과 소세지가 들어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봉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이를 받아든 사람들은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면서 되돌아 나왔다.

사람들의 행렬 끝에는 시신을 안치하고 무덤을 덮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서 묘지를 만들었다.

장례식 상주는 직접 나무를 엮어 만든 치마와 숄더를 입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표정 뒤엔 무거운 그늘이 엿보이긴 했다. 장례식이라는 무게감 때문이리라.

가만히 생각해보면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닭과 소시지를 나눠준다면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었다.

‘공수레 공수거’, 어차피 떠날 때 가지고 가지 않는 돈, 이렇게 베풀고 간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는 걸 짐작할수 있었다.

살아 있는 자는 사자의 이름을 떠올리거나 그와의 추억을 돌이켜 볼 때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남을 것이다.

우리의 옛 장묘문화 중 온 마을 사람들이 꽃상여를 장지까지 옮긴 후 주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모습과 비슷했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약간 결이 다른 게 있다면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생닭과 소시지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통가의 장례식은 그런 점에서 무엇인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장례식이 주는 무게감이 엄숙하고 애통해 할 일이지만 밝고 환한 분위기로 승화시키는 통가인의 정체성과 전통성이 품격있게 느껴졌다.

죽음은 모든 인류의 숙제다. 어느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고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다. 다가 올 죽음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추하게 기억될 것인가이다.

사실 나는 이 나라의 묘지를 탐방할 때 신선한 문화의 충격을 느꼈다.

그들은 가족들이 묘지 주변에 오순도순 모여 음식을 먹고, 놀이를 하고, 누워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부럽다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이유로 오세아니아나나 이와 비슷한 곳에서 묘지를 탐방하기도 했다.

그렇게 첫 날밤이 지나 목요일이 됐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일요일도 아닌데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나에게 예배를 드린다고 말해주는 이유는 일전에 내가 ‘교회의 성가대를 꼭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교회 뿐만 아니라, 연초이기 때문에 특별 예배가 많은 다른 교회에도 안내해 준다고 했다.

먼저 뚜이 목사의 교회에 들렀다.

성가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성경책 안 찬송가에는 남자 여자가 따로 부른다거나 가사가 두 개가 있지 않았음에도 약속이라도 한 듯 남·여가 따로 찬송가를 불렀다. 때로는 서로 눈과 입을 보면서 화음을 맞추기도 했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청년들도 찬송가를 잘 했지만, 어르신들의 노래실력도 그에 못지 않았다. 그렇게 한 목소리로 부르는 찬송가는 교회 밖으로 울려 퍼졌다.

또 다른 교회도 가 볼 수 있었다. 그 교회의 성가대는 율동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심지어 악기도 연주했다. 그 악기는 우리나라에서 쓰는 악기처럼 고급스러워보였다. 연주에 맞춰 찬송하고 몸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흥이 났다.

이곳 섬나라 사람들은 평소에 여락거리가 별로 없어서 인지 술을 마시고 노는 애주가가 많았다. 이들은 주로 ‘카바’ 라는 술을 많이 마셨다. 그래서 가끔 취한 사람들을 볼수 있는데 여느 나라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교화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교회에서 배우는 노래와 찬송가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교회의 성가대가 술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장례절차 중 유족측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생닭과 소시지가 든 봉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사(死)자와 산자의 교감인듯 했다.
뚜이목사가 운영하는 교회에서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습
뚜이목사가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통가인의 장례 절차 중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사자의 묘지를 만들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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