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 중앙시장
[경일춘추]진주 중앙시장
  • 경남일보
  • 승인 2021.12.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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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경해여중 교사·수필가)
 
 



유등축제 마치니 서울 손님들 “제일식당 가자”고 먼저 재촉했다. 한참을 줄 선 뒤 이층 방에서 육회와 육회비빔밥, 가오리회무침을 양껏 시켰다.“어떻게 다 먹냐” 하더니 살살 녹느니, 이런 맛 처음이니, 비린내가 왜 없냐니 하면서 싹다 비웠다. “내일은 진양호 보고 하연옥 냉면이다” 했더니, “수복빵집은 언제 가냐”고 한 술 더 떴다.

풍부한 물산과 교역으로 진주는 시장이 번성했다. 중앙시장, 천전시장, 서부시장 말고도 문산장, 수곡장, 미천장, 반성장, 대평장, 대곡장이 세력을 떨쳤다. 18세기 무렵, 중앙시장 위력이 전국 5위 안에 들었다는 기록을 보고 부강한 진주가 어제오늘 일이 아님을 알았다.

어릴 때 거상(巨商)이었던 아버지는 미곡과 농산물을 취급하는 여러 채의 점포로 눈덩이처럼 재산을 불렸다. 전국의 보부상과 인근 상인들이 부지런히 드나들고, 사나흘 출장 뒤 실어온 돈 푸대는 세다세다 날이 샜다. 자연히 음식문화, 대접문화, 영화예술 공연문화 가까이 보고 컸다. 화려한 묘기의 동춘 서커스와, 진주 소싸움. 오일장 파한 뒤 대형 스크린 흑백 영화도 보았다. 술 좋고 사람 좋아서 봄 도다리, 가을 전어 외에도 철철이 동네잔치 벌였다. 먹고 입고 볼 것들이 차고 넘친 그때가 시장통의 전성기였다.

시장을 살려서 축제문화 성공한 나라들 많다. 도쿄 도리노이치 축제와 아메야요코초 시장, 삿뽀르 눈꽃축제와 오타루 운하, 칭다오 맥주 축제와 신안(辛安)시장, 대만의 연날리기와 라오허제 시장, 푸케 배지테리안 축제와 바통비치가 그렇다.

김장철이다. 그때는 온동네 아낙들 품앗이 해 가며 300포기 500포기 너끈히 담았다. 퍼등 퍼등 산 배추를 간 절여서 갖가지 소를 넣고 버무린 뒤, 쭉 쭉 찢어 생굴이나 호래기를 곁들여 뜨끈뜨끈한 쌀밥에 얹었다. 문 닫은 칠성식당 생김치 백반이 여기서 출발했다. 명태탕, 가오리무침, 뜨끈한 돼지수육에는 김장 김치와 막걸리가 제격이라며 너도나도 앉았다. 술기운에 누군가 흥얼거리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서러워질 즈음 동짓달 교교로운 달빛이 흐붓이 내려왔다.

번영과 쇠락을 거듭하던 중앙시장이다. 진주의 특별한 점이 더 큰 형태가 될 것이라 기대하며 천천히 시장통을 빠져나왔다. 장작불 피워놓고 안간힘 다해 호객하는 소리가 죄책감처럼 밤길 내내 따라왔다.

이정옥 경해여중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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