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73)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73)
  • 경남일보
  • 승인 2021.12.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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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개천예술제 70년 기념 문학부 이경순 시인 기타(2)
오늘은 이경순 선생에 대한 고 리명길(전 경상대 법경대학장, 예총진주지부장) 교수의 글 ‘동기 이경순 선생에 대한 추억’에서 몇 가지 가려 볼까 한다.

“리영달 박사가 동성동 지금의 치과 터에 신축개업하던 날 리치과에 준 동기 선생의 선물은 구강밀러(투시경)였고 나에게 주신 것은 ‘치의학 범죄론’이었다. 그러면서 ‘이것이 나의 치과 인생의 결산이다’라 하셨다. 그분의 이야기는 참 길고 기묘한 데가 많다. 청장년 시절은 기행 일변도였다.

왜 치과전문학교에 입학했느냐 하면 한 마디로 일본군에 징병되어 끌려가기 싫어서 병역이 면죄되는 치과계통을 택했다는 이유였다. 치과 입학할 즈음에 나이가 35세 안팎의 장년이라는데 질문이 닿자 마자 ‘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낭인, 아나키스트, 허무주의, 다다이즘, 등 이 네 문구 속에 동기선생의 젊은 반생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도 없는 독립운동가, 그래도 그분은 가짜 서류로 독립 유공자가 되어 너털거리며 국가의 녹봉을 타 먹는 파렴치한 사람들을 비웃으며 내가 마음이 편하고 뒤끝이 맑다고 자랑하셨다.

둥기 선생은 진양군 명석면 외율리가 안태 고향이다. 속칭 이 참판의 후손으로 일제하에 몰락호주의 차남으로 남부러울 것이 없이 자랐고 진주제일보통학교에 유학도 했다. 하기야 자기 백씨 상순씨는 서울 보성고보를 나온 유학파이며 부친은 초대 명석면장에 임명되니 동기 선생의 사랑채가 면사무소였다. 외율리 172번지가 바로 출생지가 된다.

내가 걱정을 많이 한 것은 그분의 장지였다. 수많은 내노라는 사람들 장사에 가보면 두루 여섯 치 1평의 묘터를 구하지 못하여 허덕거리는 일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가난한 문인의 묘지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동기 선생의 가족은 안태고향을 나갔고 같은 전주이씨인 나는 외율리로 선산을 옮기고 집을 지어 들어가 외율리 사람이 되었으니 유택문제를 함께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다행으로 말년에 자기의 안태고향 내 벌먼당에 자신의 묘터를 마련하셨으니 나의 외율리 입촌을 축하해 주시던 동기선생과 그의 제씨 태순씨외 함께 외율리 묘인이 되어 저승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8·15해방 뒤부터 진주농림중학교(6년제) 위생선생을 맡으셨다. 말재주가 없어서 명강의는 못 되었으나 사건은 강의 중에 몇 번이고 일어났다.그 큰 흑판에 여덟자만 쓰면 흑판이 가득 차는 큰 글씨의 판서에 학생들을 놀라게 만든 것이 첫 사건이다. 그때에는 사회가 좌우로 첨예하게 대립했었고 학생들도 교사도 좌우로 나누어져서 아침 저녁으로 다투기 일쑤였다. 이 속애서 동기선생은 아나키스트로 자처하면서 묘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수업 중에 엉뚱하게 강론을 펼 때 학생들은 두 번 놀라고 말았다.

생식기 강의 중에 학생이 동기 선생이 적당히 넘기려는 번식에 대해 ‘저예 선생님 동물은 교미라고 하는데 사람은 뭐라고 캅니까’하고 질문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야 이놈아, 그것도 모르나’하시며 그 학생을 잡으러 가니 매질이 겁이나 달아나는 학생을 몇 시간이고 따라다녀 잡아서 혼쭐을 내며 분을 푸셨다.

해방후의 교육행정은 일제의 잔재가 남아서 관료적이었다. 황운성 교장은 군수를 지냈고 교육계의 원로였고 또 초임지가 진농이라 30, 40대의 제자가 교사라서 권위가 대단했다.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대사건이 발생했다. 동료교사가 함양으로 좌천이 되자 그 분풀이로 황 교장의 머리에 청주를 부어버렸다. ‘야 이놈아 너도 한 잔 해라’ 마음 시원한 사람들은 평소에 황 교장에 눌려서 말도 못하던 젊은 교사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동기 선생은 좌천 당하지 아니했다. 황 교장이 문인을 아끼는 탓도 있지만 진농에는 백상현(등불 편집인), 이병주, 조진대 등 이름난 문인 교사들의 힘줄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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